친일진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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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한국 사회는 죽은 귀신들을 불러내는 갖가지 굿판에 몰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선조를 몰락으로 이끌었던 헛된 공리공론, 죽은 자를 벌 주었던 부관참시(剖棺斬屍), 당리당략을 위해 죽도록 싸웠던 사화와 당쟁은 모두 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집권층이 과거에 몰두하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해 가는 시대에서 앞을 보고, 앞을 향해 죽기를 각오하고 질주하더라도 그 전도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공리공론과 과거사 정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를 전망하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을 둘러싸고, 또 한 번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쟁에 휩쓸려 들어갈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親日)’이란 단어만으로 그것은 이미 주홍글씨와 같은 터라 합리적인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한다.

우리 사회가 반세기가 훌쩍 넘는 과거사를 끌어다가 어떻게 할지, 또 한 번 갈등의 불씨를 지필 것 같아서 우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이번 법안은 정치적인 의도까지 깔려 있는 것 같아서 더 더욱 걱정스럽다.

친일 부역자를 처벌해야 하는 사람들은 사명감에 불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이 살았던 시대로 되돌아가서 그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도 사람들은 자식들을 키우고 삶을 영위하여야 하였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우리가 당시의 사람들을 평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금새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독재정권이 집권하던 암울한 시절을 되돌아가 보자. 민주화 운동을 선택하였던 사람들은 흔히 자신들만이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그래서 부를 축적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였던 대다수 민초들의 생이 값어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독재정권에 부역하였던 사람들이라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는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서 삶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누구의 삶이 더욱 가치가 있었던가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된 뒤, 한반도에서 살았던 조선인들은 적극적으로 반일 운동을 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의 통치를 도운 셈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 그들은 친일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친일 부역을 하였던 사람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 살았던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딱한 처지를 십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 가운데 가족의 희생을 무릎 쓰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 벌판을 떠돈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식솔들을 거느리고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이해가 필요하다.

지난해, 작가 복거일씨는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 친일 문제’라는 논쟁적인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곤궁한 시절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애잔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작가는 이렇게 외친다.

“‘죽은 자는 더 궁극적 소수다’ 산 사람들과는 달리, 죽은 사람들은 연합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홀로 누워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후대 사람들의 선고를 받는다.”

친일 행위에 대한 공과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본 치하에서 어떻게 삶을 영위하였고, 그들이 일제 치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현재를 기준으로 선입견에 사로잡혀 판단하다 보면 또 다른 오만과 자의적인 평가 그리고 보복이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들의 바람과는 달리 조선 말기 이 땅은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에 달하였고, 국가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시점에 다다르게 된다. 조선은 더이상 자기혁신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친일에 대한 판단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임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 와서 떠들썩하게 과거사 정리를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왜 그럴까? 게다가 이 같은 정치적 이벤트로부터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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