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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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芝蘭之交)는 향기로운 꽃인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사귐을 뜻한다.

 

선조들은 벗을 사귈 때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고결한 사귐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조선 중종 때 일이다. 당시 대학자였던 조광조(趙光祖, 1482~1519)는 덕과 예로 다스리는 개혁정치를 주창하다 유배돼 사약을 받고 죽었다. 역적의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역적으로 몰리던 때였다. 시신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손수 염한 뒤 묘 자리까지 마련해준 이가 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인 양팽손(梁彭孫, 1488~1545) 이었다. 죽어서도 지란지교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래서인가, 생전의 조광조는 양팽손의 사람됨을 가리켜 말하곤 했다.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면 난초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다”고.

 

▲향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실체가 꽃향기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은 꽃향기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는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곤 합니다.>며 전반부를 이어간다.

 

시는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꽃을 늘 보게 된다. 꽃향기의 고귀함을 모른다. 꽃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꽃향기의 여운도 모른다. 때문에 꽃향기의 새로움을 잊고 산다.

 

▲사람도 꽃처럼 저마다의 향기를 낸다. 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창조된다. 살아온 대로 몸 안에서 풍겨 나온다. 향기의 종류 또한 그저 그런 향기가 있고, 가슴을 대고 다시 맡고 싶은 향기가 있다.

 

사람의 향기는 늘 스스로에 머물러 있다. 버리려 해도 버릴 수 없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도망도 갈 수 없는 게 사람의 향기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좋은 만남은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남에도 좋고, 나쁘고, 아름답고, 역겨운 향기가 묻어난다는 것이다.

 

최장 10일간의 추석연휴가 끝났다. 새로운 충전의 기운이 어떤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론 꽃향기라도 제대로 맡아봐야겠다.<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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