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씨 亡, 鄭씨 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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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韓-中-日) 등 한자(漢字) 문화권에서는 글자 몇 자의 파자(破字)나 은유법만으로 큰 일을, 그것도 나라의 큰 일을 저지르는 수가 있다.

조선때 중종을 모시던 희빈(熙嬪)도 그랬다. 그녀는 당시 한창 세력을 확장, 정치를 농단하려던 대사헌 조광조 일파를 타도하기 위해 역시 파자의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써 넣어 벌레가 파먹도록 했다.
그리고 조광조가 임금이 되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주초(走肖)는 조광조의 성(姓) 조(趙)자의 파자요, 나뭇잎에 그렇게 씌어 있으니 내용을 모른 임금이 속아 넘어갈 법도 하다.

기묘사화가 일어난 한 원인으로 조광조는 물론, 그 일파가 떼죽임을 당했다.

17세기 일본의 실권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추모하기 위한 대불전(大佛殿)과 큰 종을 만들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종에 새긴 글귀를 문제 삼았다.
한 선승(禪僧)이 지은 “국가안강 군신풍락(國家安康 君臣豊樂)”이란 이 종명(鐘銘)이 자기를 저주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즉 국가안강(國家安康)에서 가강(家康) 사이에 안(安)을 끼워 넣은 것은 자기 곧 이에야스(家康)를 둘로 쪼개 파멸을 시키려는 저주요, 군신풍락(君臣豊樂)에서 풍(豊)은 도요토미(豊臣)를 뜻하는 것으로 즐겁게 신하가 되겠다는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에야스는 반대파 떠돌이 무사들이 대불전의 낙성식과 타종식을 기화로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일부러 날짜를 연기할 명분을 찾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 일본이 시끄러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일부 중앙 일간지에 5단 전단 크기로 “이씨망(李氏亡) 정씨흥(鄭氏興)”이란 큼직한 제목의 책 광고가 연일 나가고 있어 이 또한 은유가 아닌지 모르겠다.

“정감(鄭堪) 예언, 말세에 이씨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부제까지 붙은 이 광고의 책은 아마 정감록(鄭鑑錄) 등 예언서를 종합, 주해한 것 같은데, 묘한 시기에 신문광고로 선전하고 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배경을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선거가 90여 일밖에 안 남았는 데다, 하필 유력한 출마 예상자 중에는 이씨도 있고 정씨도 있다.
조선때 금서에 포함됐던 ‘정감록’의 이 시대 출현 동기가 의아스럽다. 이 책의 예언들이 거의 은유법을 쓰고 있는데, 혹시 시비가 없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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