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수재민, 그리고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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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다. 수마가 할퀴고 간 들판은 수척해지고 야위었다.
그만큼 제15호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상처는 컸다.
‘루사’가 제주를 강타하면서 큰 피해를 당한 이들은 다름아닌 농민과 어민들이다.

어선이 침몰되고 비닐하우스가 강풍에 쓰러지고 수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인 콩과 조, 참깨… 그리고 감귤 비상품과 증가 등등. 수확을 하더라도 상품성이 크게 떨어질까 염려하는 농민들의 속은 이래저래 타 들어간다.

당근과 콩밭이 폭우와 강풍에 쓸리면서 발생한 막대한 재산 피해에다 영농자금 상환, 자녀 학비 등 씀씀이가 쏠쏠치 않은데 바로 코 앞이 추석이다.

태풍으로 농사를 완전히 망친 어느 농민의 한숨은 차라리 분통에 가깝다.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는 하우스감귤 농가에 발떼기로 이미 계약된 감귤까지 가격을 인하하라는 상인들의 요구다. “태풍으로 감귤이 피해를 입어 상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애써 항변해보지만 돌아가는 세상 인심은 그저 팍팍하기만 할 뿐이다.

어디 제주뿐인가.
순식간에 집을 통째로 잃어버린 수재민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의지해 하루하루 건사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논과 밭이 자갈밭으로 변하고 도로변에 부서진 집, 전신주들이 흉측한 몰골로 겨우 지탱해 있다는 소식은 연일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다.
추석을 하루 앞둔 이 가을에 보는 ‘살(煞)가운’ 풍경이다.

급기야 정부가 태풍 ‘루사’로 피해를 본 전국 16개 시도 203개 시군구 1917개 읍면동 모두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 특별위로금을 지원하는 등 복구에 나섰다.

여기에 줄을 잇는 자원봉사자들이 복구작업에 큰 힘을 보태고 있고, 전 국민이 한푼두푼 내 놓은 수재의연금이 모금 사상 최고액을 돌파했다.

“하루 아침에 삶의 기반이 무너진 수재민들을 보고 안타까웠다”는 기탁자의 정성은 차치하고라도 멀리 강릉에서 자원봉사를 나섰던 개인택시기사가 트럭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비보도 날아들었다.

물론 제주 지역에도 태풍으로 날아간 생활터전을 복구하기 위해 민.관.군이 나서 연일 구슬땀을 흘렸다. 복구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힘에 부쳤지만 농산물 집하장에서부터 해안도로, 비닐하우스, 양어장 시설물, 주요 관광지, 가옥, 과수원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피해 복구에 나섰다.

농.어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희망의 불씨를 지핀 자원봉사자들. 어느 작가는 고통을 맞지 않는 구두와 같다고 했다.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일단 우리의 발이 들어가기만 하면 점차 그 괴로움은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수마에 할킨 우리 이웃의 고통을 구두에 비할까.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고통이 큰 만큼 자기에 맞게 감내해내는 지혜를 갖고 당당히 맞서자는 말일 게다.

고통을 같이 한 이들이 있기에 빈곤과 황량함 속에 성큼 다가 온 추석이 그나마 풍요로울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풍경으로 인해 가을은 늘 우리에게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 없다는 이치를 가르쳐준다.

내일도 어김없이 보름달은 뜰 것이다.
그러나 집없이 컨테이너 박스에 나앉은 수재민들이 보름달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겨를이 있겠는가.

때문에 추석날, 내일 하루만은 조용히 보름달을 맞을 일이다.
소박하고 검소한 차례상으로 추석을 맞자.

우리 조상들은 가을의 풍성함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던 미덕을 갖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찾는 날, 태풍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자.

비록 가난한 살림이라도 달빛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어 주듯이 누구에게나 위안의 달빛이 되게 하자.
그리하여 태풍으로 쓰러진 모든 것들을, 상처받은 모든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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