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추석 이야기 - 이웃과 함께 하는 여유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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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일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뛰었다.

곤밥(쌀밥)에 돼지고기 두 점, 얇게 썬 사과 한쪽, 솔향기가 솔솔 나는 곤떡(송편) 등 우선 입을 즐겁게 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신발이나 바지라도 사 신거나 입게 되면 날아다닐 정도로 들떴다.

돼지추렴을 하면 누가 어느 부위를 가져가느냐가 중요했다.
갈리(갈비가 붙어 있는 부위)나 숭(삼겹살 부위)은 다투면서 가져가지만 뒷다리 부분은 인기가 없었다.

즉 적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늘 삼겹살 쪽을 택했다.
적 하기가 쉽다는 것은 그만큼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명절날 오신 친족분들에게 돼지고기 두 점씩은 돌아가야 하니까 적은 양으로 몇 꼬치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일이었다.

집안 경제 사정에 따라 크기는 달랐다.
그래서 보말적(바닷가 고동처럼 작게)을 하는 집도 꽤 있었다.

고기 적은 늘 아버지가 하셨다.
적을 하다 부스러기 고기라도 생기면 그것을 먹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던 시간은 매우 길었다.

내가 하는 일은 차례상에 올릴 당유자를 따오는 일이었다.
4.3 사건 전에 살던 집터엔 큰 당유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덜 익었지만 과일 종류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기억된다.

아버지는 3일 전부터 차례를 지낼 방에 청소를 하고 향을 피웠다.
때문에 온 식구가 한 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차례를 지내는 친족 집은 우리 집까지 다섯 집이다.
가까이 살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다 돌고 끝나려면 오후 3시가 넘었다.
집집마다 주는 대로 먹었다. 덕분에 한 밤에 둥근 보름달을 보며 몇 번이고 변소를 드나들었다.

1959년 추석날 새벽은 생각만 해도 겁이 난다.
태풍 ‘사라’에 우리 마을은 집이며 농작물이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초가지붕은 날아가고 허연 뼈대만 남은 천정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어머님 얼굴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그런 슬픈 추석이 제주에도 있었다.

오늘도 강원도를 비롯한 수해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하고 있을 것이다.
보금자리를 잃고 비좁은 컨테이너 속에서나마 차례를 지낼 수 있는 집은 그래도 다행이다.

그러나 수해에 떠내려간 가족들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유족들과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를 상실한 후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무거운 마음만 짓누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이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햅쌀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도 생겼다.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음력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한다.

특히 추석엔 객지에 나갔던 가족들이 돌아와 아침에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는 데 따라 명절 세시기도 변하고 있다.

자식들의 편의를 위해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고, 콘도나 외국의 호텔에서 차례를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부탁만 하면 차례상을 몽땅 차려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꼭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옛 성현들은 시속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명절 행사도 이제는 간소하게 하고 가족들이 단란한 시간과 휴식을 취하는 날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올 추석도 두루 풍성했으면 한다.
농민들이 흘린 땀방울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쓸쓸한 이웃들 그리고 병마와 싸우는 이웃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저것으로 깊어진 갈등의 골을 없애는 인화의 시간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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