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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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얼굴의 주름살이나 흰머리를 원숙해져 가는 ‘삶의 궤적’이라거나 ‘인생의 계급장’이라고 한다.

악명 높은 네로황제의 부인 포파이아는 주름살이 느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주름살을 없애는데 나귀의 젖이 가장 좋다 하여 틈만 나면 나귀젖 목욕을, 나귀젖 세수를 하루에도 수십 번 했다 한다. 그것도 바로 젖을 짜낸 가장 신선한 나귀젖을 사용했다.

중국의 고대의학서인 ‘의심방(醫心方)’에는 주름살을 펴는 비방(秘方)이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기록돼 있다.
천문동.밀.차전자라는 한약재를 가루내어 세 손가락으로 식후에 먹길 30일이면 주름살이 펴지고 100일이면 백발이 검어진다고 했다.

▲제주설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아주 마음씨 좋은 사람이 정직하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날 저승사자가 오더니 이 세상 목숨이 다됐으니 저승에 함께 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할일도 많고 이룩할 것도 많은데 미리 알려주기나 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며 함께 가기를 싫어했다.

저승에 간 이 사람이 이런 하소연을 하자 염라대왕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네게 그동안 여러 번 그 때를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
이 사람이 전혀 알려준 사실이 없었다고 반발했다.
염라대왕이 이에 “그동안 네 얼굴에 주름살을 하나 둘 그어주었다.
네 머리에도 흰머리를 하나 둘 심어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래도 수긍을 하지 않자 또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승에서의 기억들을 조금씩 조금씩 잊게 해주지 않았느냐”

▲이 같은 제주설화가 뜻하는 것은 주름살이 진다는 것, 흰머리가 난다는 것 등등이 저승에서 부르기 전에 이 세상에서의 일을 다 바르게 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며, 늙어간다는 것도 ‘부름’을 앞당겨 알려주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사람의 인생에 때를 알아 자연의 법리에 순응하려는 제주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씨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인생살이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연의 법리에 순응하라고 미리 그 진퇴의 때를 알려주는 ‘주름살 현상’이나 ‘백발현상’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일을 다 바르게 하고 준비를 한 후에는 마음에 주름살을 잡지 않는 삶을 생각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가을이다.
어제는 추분(秋分).
한라산에는 단풍이 저만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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