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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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전 제주학생문화원장/수필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란 노래 가사의 일부다. 나는 이 노래를 잘 부를 줄은 모르면서도 이 부분의 가사를 곧잘 흥얼대곤 한다. 그것도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이맘때. 하긴 옷깃 사이로 냉기가 스며들 때면 누군가 따스한 체온이 그리워진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낙엽도 바람 잔 곳으로 제 안식처를 찾아 굴러간다는 늦가을에 유난히 결혼을 많이 하나 보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체온을 공유할 짝을 찾는 시기,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인 셈이다.

친지의 자녀 결혼식에 들렀다. 젊음으로 한껏 포장된, 어느 화가도 완벽하게 그려내지 못할 청신한 모습으로 하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신랑, 신부.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예식을 끝낸 친구들의 여흥 레퍼토리도 볼만하다. 뽀뽀하라는 주문은 약과이고, 신부를 안아 올리고, 엎드려 신부의 의자가 되라 한다. 신랑의 정력 테스트(?)라나. 그렇다면 신랑의 우선 조건은 힘이나 정력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신부 앞에서 온갖 굴종을 참아내야 하는 인내력인 듯도 하고.

옛적, 신부의 애절한 사랑의 메시지를 얻어내기 위해 신랑 친구들이 신랑의 발을 묶고 매달아 괴롭혔던 내용을 각색한 모양이다.

틀에 박힌 순서에 식상할 하객들을 위한 깜짝 서비스다. 삽시간에 식장 안이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중후함은 덜해도 홀가분한지 신랑, 신부도 긴장을 지우고 화색을 피워낸다.

우리 인생도 시종 중후함만을 연출해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한 노릇인가.

그러니 사랑의 확인이나 가약에도 형식을 허무는 게 필요한 것이다. 형식에 얽매인 우리의 삶이 어쩌면 우리의 사랑의 표현을 억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짧은 개그의 여흥마저 끝내자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하객들. 그들도 결혼이라는 찬란한 생의 이력쯤은 모두 다 그려봤다는 표정들이지만 잡은 손도, 팔짱 낀 다정한 연인의 포즈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 학습한 사랑의 퍼포먼스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이런 날은 모두가 연인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사랑의 바이러스도 그 위세를 떨 칠 수 있을 텐데.

사랑의 표현에 인색하고 서툰 우리네 정서가 부끄러울 정도다. 사랑은 그 소유가 정해지면 메말라 버리는 것. 욕망의 대상도 내 것이 되고나면 그 불꽃은 꺼지게 마련인가 보다. 결혼 전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그 도발적 포즈는 다 어디로 잦아든 것일까. 결혼 후 고정된 삶의 안정 속에서 또 다른 욕망을 키워왔겠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랑해!’로 아침을 열고, ‘사랑해요!’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랑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삶은 그림자 쇼에 불과하다’했던가.

그러니 내 주위의 가까운 이들에게 따스한 사랑의 표현을 쉼 없이 건네는 그런 삶이어야 하리라. 그러노라면 우정도 관심까지도 뜨거운 사랑으로 승화되어 갈지….

신부의 우아한 실루엣의 웨딩드레스가 순간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저들의 사랑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을 위한 연출이어서는 아니 되리라. 생을 마치고 떠날 때 이 세상에 쌓아놓았던 모든 공력(功力)의 흔적들은 육신과 함께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사랑의 씨알은 또 다른 사랑을 잉태하리니. 사랑의 신이시어, 이 가을,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에 짝 지워지는 모든 이들은 저들의 인생이 끝나는 그날까지 뜨거운 사랑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스스로 확신 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 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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