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들의 맘새
나라들의 맘새
  • 제주신보
  • 승인 20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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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세화고등학교 교장/시인>

몸새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쌍둥이라 해도 똑같지는 않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겉모양, 즉 몸새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 주장처럼 다 다르다.

몸새가 있으니, 맘새(마음 씀씀이, 마음의 모양 따위)도 있지 않을 것인가?

사람들의 맘새(Mechanism, 機制:기제)는 어떤가.

슬그머니 방귀를 뀌어 놓고서,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하여 도리어 버럭 화를 내는 맘새(공격기제)도 있고, 그 자리를 슬쩍 피해 버리는 사람(도피기제)도 있을 테고, 자신을 방어하려는 듯이 태연을 애쓰는 맘새도 있을 것이다.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픈 이는 페시미스트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은 사촌이 노름판에서 밭을 팔아먹는다면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지 않을 것인가.

나라(國家)도 유기체(Organism)이니, 맘새가 있지 않을까.

글로벌 시대라고들 하면서, 각 나라들은 어떤 맘새를 고유적으로 속으로 지니고 있을까?

학교 현장에서의 ‘국제이해교육’은 우선 학생들의 맘새를 깨끗하게 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탈무드’의 랍비 이야기 한 가지.

한 랍비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물었습니다. “밤이 끝나고 낮이 시작되는 정확한 순간을 어떻게 알아 낼 수 있겠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서 한 마리의 동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양인지 개인지 구별 할 수 있을 때입니다.”

랍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다른 제자가 대답을 했다.

“멀리서 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이 무화과 나무인지 복숭아 나무인지 구별 할 수 있을 때입니다.”

역시 랍비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대체 그것이 어느 때입니까?”

“한 이방인(외국인)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그를 형제처럼 받아들여 오래된 모든 갈등이 소멸되는 그 순간이 바로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순간이다.”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렇게 가르쳐왔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어떤가. 사람을 죽이고서도(천안함 사태) 아니한 척 한다.

그에 대한 중국의 속마음은 어떤가.

‘북한은 중국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른다.’(The Korea Times 2010. 11.3)라고 밝혔듯이 북한의 멸망은 한반도 휴전선을 중국의 국경선으로 그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만(萬)의 얼굴 을 한 중국을 한 가지만 보고 단정하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제주일보 2010. 11. 3,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의 제주글로벌아카데미)

독도를 두고 생떼를 쓰는 이웃 또한 ‘국화와 칼’에서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를 읽어 보시라.

치욕과 모멸감에 피가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영원한 적(敵)은 없다.

또한, 나라를 사이엔 영원한 친구도 있을 수 없다.

국가 간에는 모두 페시미스트이다.

외양(外樣)의 미소가 속마음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저 그 맘새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할 뿐이다. 지금 열리고 있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그 맘새들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