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원의 받아쓰기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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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인협회 부회장/소설가>

브라질에 스타 의원이 탄생해서 화제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총선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름은 티리리카, 직업은 광대이다. 그가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당선 후의 딱한 처지 때문이다. 브라질은 문맹자가 공직자 선거에 나설 수 없도록 법률로 정했는데, 티리리카는 지금 자신과 겨뤘던 후보로부터 문맹자로 고발되어 당선이 취소될 상황에 처해 있다.

상황이 다른 우리 입장에서 보면 ‘설마 문맹이면서 의원직에 도전했겠어’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지만 브라질의 경우는 문맹률이 자그마치 인구의 20%, 360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이런 자격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이 문맹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거법원에서 분명하게 증명해야 하는데, 그걸 증명하는 시험 방법이 매우 간단해서 유쾌하다. 시험관 앞에서 신문 2부를 끝까지 읽는 것과 받아쓰기를 하는 것. 이 두 가지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그는 의원직을 수행할 수가 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궁금했던 점은 티리리카가 치를 시험의 당락 여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선택한 지지자들의 정치적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티리리카에게 전국 최다득표의 영예를 안겨준 135만3355명의 지지자들은 선거 전에 이미 상대후보의 문제 제기로 그가 문맹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상대후보의 고학력과 유능한 행정관료 경력을 택하지 않고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광대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표차로 말이다. 그 지지자들이 가진 선택의 기준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이미 바른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것은 고학력과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항상 국민을 향해 열린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티리리카의 당선을 ‘룰라의 학습효과’ 덕분이라고 믿고 싶다. 룰라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지금 지지율 80%를 상회하는 놀라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내치와 외치를 워낙 훌륭하게 해내서 브라질의 국격을 몇 단계 끌어올린 주인공. 그래서 이제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된 룰라. 그를 통해서 브라질 국민들은 이제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부러운 일이다.

룰라는 대선 4수만에 당선의 영예를 안은 3전 4기의 주인공이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남이 씹다버린 껌을 주워 허기를 때울 정도로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중퇴가 정식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그러나 그 학력으로도 문제투성이인 브라질을 오늘의 빛나는 브라질로 변모시켰다. 그가 집권하기 전까지 브라질의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절대 빈곤과 무지로 신음하는 하위 계층이 40%에 이르렀지만, 그의 집권 8년이 흐른 지금 브라질은 빈부격차 해소와 고도성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세계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끄덕 없이 순항하는 나라가 됐다. 룰라를 높게 평가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

그것은 그가 대통령이 돼서도 가난으로 배우지 못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삶을 잊지 않고 일관되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올해 어느날 룰라가 방송에 나와 인터뷰를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브라질 국민들이 이제 브라질이 자신들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이다.

다시 티리리카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나는 희망한다. 부디 어렵게 당선의 영예를 안은 티리리카가 읽기와 쓰기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기를. 그래서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는 훌륭한 정치가로 성장해 이 세상 모든 정치가들의 귀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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