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민속예술단’ 되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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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前 제주예총회장/시인>

‘도립무용단 정기공연에는 제주가 없다.’

지난 9월 16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제주도립무용단’의 정기공연이 있는 날, 제주의 어느 인터넷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동래학춤’, ‘강강술래’, ‘살풀이 춤’, ‘북춤’, ‘부채춤’, ‘풍속도’ 등 팔도 민속춤들을 한자리에 선을 보이면서도, 제주민속은 안 보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공연 날짜와, 장소가 빠진 팸플릿도 처음이거니와, ‘문화진흥본부’와 ‘도립무용단’만 병기하고, ‘도립예술단’ 명칭은 아예 빼버렸다.

또 어느새 준비했는지, 정기공연이 끝나자마자 11월 5일, ‘춤과 대중음악의 만남’이란 기획공연이 있었다.

‘제주민속’의 굴레를 벗어나서 오로지 무용단으로서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고, 무용의 대중화 선언 같기도 해, 그저 아리송하기만 했다.

어떻게 만든 단체인데 그러는가?

그 어렵던 시절 구걸 행각을 벌여가면서까지 꾸려가던 민간 자생단체가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그러는가?

제도권에 들어와서 고작 20년 사이에, 들리느니 잡음이요, 보이느니 갈등이다.

애향심으로 제주다운 단체를 가꾸어야 할 단원들은 80%가 낯선 타향살이요, 가장 예술혼에 불타야 할 젊은이들이 노동시간이나 따지고 앉았다니,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도립예술단’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제주의 보배로운 ‘민속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던 도민들이 주머니를 털어 단체를 만들고, 끈질기게 이어온 눈물겨운 대가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시대, 소위 개발독제시대에는 ‘문화예술 사업’이 산업화의 논리에 가려 항시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어느 지자체인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골치 아픈 예술단체 만들기에 손을 댔겠는가?

당시 한 여학교를 중심으로 모인 순수민간단체 ‘제주민속예술단’이,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작품 ‘해녀놀이’로 장려상을 받으며, 전국무대에 첫 선을 보인 것이 발단이 됐다.

또한 제8회 대회에는 작품 ‘영감놀이’로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받는 쾌거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1975년 이후 안무자의 급서 등으로 제주민속예술활동의 침체기를 맞게 되는데, 이에 따라 상설단체의 필요성이 거도적 여망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참동안 도민들 여론의 도마에 오르다가 1985년 말, 드디어 당시 제주시장(전창수)의 결단으로 ‘제주시립민속예술단’을 창단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제주도에선 제도권 예술단체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그 후 1987년 ‘재단법인 제주도민속예술단’, 다시 1990년 ‘제주도립민속예술단’ 등, 5년 사이에 거듭되는 변모를 해 왔다.

이어 ‘민속예술단’을 더욱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취지로 ‘제주도립예술단’이 창단(1997)되었는데, 그 때 명칭에 민속자(民俗字)를 뗀 것이 오늘날 두고두고 ‘민속’을 계륵(鷄肋)의 신세로 내몰아, 이리 채이고 저리 밀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 뗀 민속자를 다시 찾아 붙여서, 불쌍하게 계륵의 신세가 되어버린 ‘제주 고유의 민속예술’만을 끌어 모아 전담 공연하는, ‘제주도립민속예술단’을 되살릴 것을 거듭거듭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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