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대서 빛난 그들의 승리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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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돈.양용은 등 스포츠 선구자들의 영광

해방 후 찾아온 혼란기, 6.25전쟁, 5.16군사정변 등 격변기에도 스포츠는 민초들에게 기쁨을 주는 역할을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한 지리적 여건에도 제주인들은 스포츠를 통해 단합된 모습을 보여줬다.

 

스포츠의 공간은 제주라는 작은 섬이 아니었다.

 

아시아와 세계 정상에 서는 제주 선수들이 샘솟듯 나타나면서 제주의 자긍심 또한 높아졌다.

 

오늘, 다른 이가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걷거나 걷고 있는 우리들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제주 스포츠 스타들의 영광을 느껴본다.<편집자주>

선구자는 외롭다.

 

아무도 밟아본 적이 없는 길을 걷는 이는 외롭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한국 시간 오후 4시30분), 제주의 산 사나이 고상돈(당시 29세)은 외로움을 어깨에 진 채 이 세상의 지붕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세계 최고봉 높이 8848m.

 

그가 진 외로움의 무게 8848의 단위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어깨를 누르는 외로움의 무게를 이기고 정상에 섰다.

 

그는 1975년 중국 등정대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세워 놓은 삼각대를 발견하고는 “틀림없이 바로 여기”다며 정상임을 재확인했다.

 

고상돈은 1평 남짓한 정상 꼭대기에서 무한대의 감동을 느꼈다.

 

그는 셀파 펨바 노르부(당시 28세)가 찍는 사진기 앞에서 태극기를 산 정상에 꽂았다.

 

1953년 영국의 에드먼드 힐러리경과 셀파인 텐징 노루가이가 처음으로 이 산을 오른 이래 56번째 등정자인 고상돈의 이름이 정상에 새겨졌다.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이곳을 등정한 나라가 됐다.

 

그는 또 1976년 설악산 동계훈련 때 눈사태로 숨진 고 최수남, 전재운, 송준송 대원의 사진을 눈 속에 묻었다.

 

그는 1시간 동안 정상에 있으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의 체취를 맡았다.

 

제주북교를 5학년까지 다닌 그는 10월 29일 고향 제주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어머니 박지수씨도 그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줬다.

 

그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대상은 북미 최고봉 매킨리. 높이 6194m에 산체 상부의 3분의 2가 만년설로 덮여있는 산.

 

1979년 5월 29일 새벽 5시. 고상돈은 박훈규 부대장, 이일교 대원과 산행을 떠났다.

 

이날 오후 7시 15분 무전기를 통해 고상돈 대장의 목소리가 동료들에게 전달됐다.

 

‘여기는 정상이다.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고상돈이 지상에서 건넨 마지막 말이 됐다.

 

고 대장을 비롯한 3명은 매킨리 정상 서벽에서 조난당했다.

 

박 부대장만 살아남아 6월 28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산 사나이는 결국 산에 묻혔다.

 

선구자 고상돈의 길을 좇아 후배 산악인들이 오늘 산에 서 있다.

 

‘바람의 아들’ 양용은(38)의 또 다른 이름은 늦깎이 골퍼.

 

제주고를 졸업한 양용은은 21세 때부터 골프장에서 일을 하며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처럼 어릴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동양인에게는 한계로 여겨졌던 메이저대회의 높을 벽을 허무는 기적을 성취했다.

 

양용은은 2009년 8월 17일 미국 미네소타 주 헤이즐틴 내셔널GC(파 72)에서 끝난 제91회 PGA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합계 8언더파 280타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3타 차로 제치면서 우승했다.

 

양용은은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처음으로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감격을 누렸다.

 

그는 마지막 라운드 14번홀(파4)에서 역전 이글 칩샷을 성공시키며 승리를 확신한 듯 오른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결국 메이저대회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로 나선 1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던 황제 타이거 우즈에게 역전승을 거두며 골프 역사를 새롭게 썼다.

 

미국의 폭스스포츠는 양용은의 PGA챔피언십 우승을 역대 스포츠 사상 세 번째로 큰 이변으로 보도했다.

제주가 낳은 또 하나의 스포츠 스타는 프로야구의 강민호(25.롯데 자이언츠).

 

강민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주전포수로 활약, 한국 야구가 9전 전승을 휩쓸며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앞장섰다.

 

그는 제주인 중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사나이로 기록됐다.

 

신광초를 졸업한 강민호는 지난 해 열린 제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도 한몫을 했다.

 

강민호는 또 올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제주마라톤의 김원탁(46)도 아시아에 제주의 자긍심을 널리 알린 스타다.

 

김원탁은 1990년 제11회 베이징아시안게임에서 2시간12분56초로 2위인 일본의 시미즈사토루(2시간14분46초)를 따돌리며 골인, 아시아 마라톤을 제패했다.

 

김원탁은 세화중 때 육상에 입문, 1982년 한림공고 2학년 때 제주일보사가 주최한 도일주 역전 경주대회에서 팀을 종합 2위로 끌어올리고 자신은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이와 함께 2002년 월드컵축구 4강 주역인 최진철(39)도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자랑거리.

 

오현고 출신인 최진철은 월드컵 당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후반 10분 부상으로 교체되고 터키와의 3~4위전에 출장하지 못했으나 그 외 6경기 562분에서 보여준 투혼은 너무나 빛났다.

 

외신 기자들은 “한국 4번(최진철)이 어떤 선수냐”며“한국에 세리에A(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급 수비수가 있는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최진철은 7월 8일 금의환향한 제주공항 환영식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민들이 보내 준 열렬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02년 6월에 살았던 우리들은 행복했다.

 

박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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