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명문을 다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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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엄마의 특목고 성공기’

‘공부 9단 오기 10단’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책 광고 제목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는 ‘고교등급제’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이를 특목고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는 그러고 보니 보통축에도 못 끼는 엄마인가 보다. 누구는 공부하기를 무슨 태권도 단수 따듯이 하고 있는데 그리고 공부 잘하기 위해 오기 또한 짱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못한 나는 이제 또하나의 복병, 고교 등급제 앞에서 그저 황당하고 참담할 뿐이다.

황당한 것은 내가 아직 고교 등급제라는 엄연한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서이고 참담한 것은 돈 많이 못 벌어 강남에 살지 못한 것이 자식에게 미안해서이다. 사실, 나는 고교등급제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강남에 못산다는, 아니 안산다는 것이 이렇게 자식에게 미안한 일이 될 줄을 몰랐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서울에 살지 않고 더더군다나 강남에 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강남 사는 학부모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강남 사는 아이들이 밤 늦게까지 과외로, 학원으로 ‘뺑뺑이’도는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이 앞에서 더 이상 우리가 강남 안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냔 소리를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이제 이땅에서 자식 앞에 어깨 펴고 살려면 무조건 강남으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는가.

그리고 누가, 왜 강남 살지 못하거나, 강남 살지 않는 부모들을 자식앞에서 미안해 하게 하고 있는가. 이제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는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어려서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특목고를 보내고 그런 다음에 강남으로 이사를 가는 부모가 되고 말았는가. 그런데 강남 살려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 것일까. 고교등급제를 행한, 정확히 말해 수시입학에서 강남 학교의 수험생을 암암리에 우대한 것이 확실한 입학전형을 한 대학들이 처음에는 고교 등급제를 행한건지, 안한건지 알쏭달쏭한 포즈를 취하다가 교육부의 조사가 들어가고 마침내는 고교등급제의 실체를 확인한 교육부가 제제하겠다고 하자 대학들이 이젠 아예 공공연하게, 고교간 학력차가 있는지 없는지 어디 한번 따져보자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등급이 있다고 치자. 인간에게 등급 매겨지는거야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돈 있으면 일등 인간, 돈 없으면 이등 인간, 서울대, 연고대 나오면 일등인간, 지방대 나오면 이등도 아닌 삼류로 전락하고 마는게 이 나라의 현실인데.

그러나 나는 왜, 바로 그 일등, 혹은 일류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 당국자들이, 고교등급제를 문제삼자, 어디 한번 따져보자고 나서는 모습이 암만해도 일등인간, 일류대학 사람들의 모습으로는 비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나라에서는 그래도 지성의 최고 전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데, 왜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들이 몸담고 있는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대학들이 이제 내 보기엔 명문이 아닌 그저 ‘돈문’대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그러니까,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만이 가는 학교 말이다.

사실 이나라에서 일류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고등학교에서 남보다 수학, 영어 잘하고 달달 외우는거 잘하는 사람들이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은 또 돈이 그 학교들에 들어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지 않는가. 결국은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한 시절을 남과 다불어 사는 것을 체화시키기보다는 남을 이기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끔 길들여진 사람들이 아닌가. 명문대 입학도 시키는 돈의 힘을 믿는 것이 자연스럽게 된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진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그러나 이제 나는 고교등급제를 남모르게 적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어디 한번 따져 보자고 나선 이땅 최고 지성이라는, 이땅 최고 명문이라는 대학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오늘 이땅 지성은, 명문은 고작 그 수준인가? 혹 지성과 명문이라는 외피를 쓴 야만이 아닌가? 차이를 차별하는 행태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폭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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