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素軒) 남도영(南都泳) 박사. 그는 우리나라 최대의 말 생산지인 ‘제주도’의 마정(馬政)을 집대성한 역저 ‘제주도 목장사(濟州島牧場史)’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23일 경기도 고양에 있는 그의 집으로 수상 소식을 전했더니, 그는 “당혹스럽다”는 말부터 했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 큰 상을 받게 돼 분에 넘치는 영광이지요. 이 책을 더 손질해 훌륭한 책으로 완성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무거운 책임을 느낍니다.”
연구 경위를 물었더니, 1969년 한국사연구회에 ‘조선시대 제주도목장사’를 발표한 게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그 후 30여 년간 지속적으로 제주의 마정과 목장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1996년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으로부터 ‘제주도마정사’ 집필을 요청받았다.
그가 말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960년부터. 그의 전공은 군제사(軍制史)인데, 군제사의 중심에 말(마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전공을 바꿨다.
“전통사회에서 말은 국토방위뿐 아니라 교통.산업.외교 등 사회 전반의 중추를 담당했다. 전투용 군마, 교통용 역마, 통신수단으로서 파발마, 말가죽.말의 심줄 등을 활용한 일상용품 등등 말은 국토방위뿐만 아니라 전통사회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군제사를 연구하면서 마정사를 연구한 셈인데, 그 성과물로 1976년에는 ‘한국마정사 연구’도 발간했다. 마정사를 연구하면서 한국 마정의 핵심이 제주도목장사라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한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제주에서 왜 목장이 중요한가’라고 물었더니, 우선 목장지로서 갖춘 자연조건을 들었다.
“한반도 남단 외딴섬이지만 목초가 풍부하고 맹수가 없어 선사시대부터 목장지로 최적이었다. 제주는 말 명산지로 세계마문화 사상 대단히 중시된 곳이며, 오늘날 한국 고유 재래종의 하나인 ‘소형마(과하마.조랑말)’의 원산지로서 마지막 혈통이 보존되고 있고, 경주마 생산지로서 국내 유일한 말 육성목장이 있는 곳이다.”
제주의 말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에 전해지는 본토(동해,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과하마와 동일종이다.
청동기시대부터 가축화돼 군마.교통.역마 등 여러 용도로 쓰였고, 국외적으로 원(元).명(明).청(淸)에 수출돼 동북아 문화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때문에 조선 영조는 제주를 “국마(國馬)의 부고(府庫)”라 했고, 조선조 목사 이형상은 “섬에서 일은 마정(馬政)보다 큰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원.명.청나라 사료에도 제주목장과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쉴새없이 군마로 징마를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외국으로 나간 우리나라 말이 원나라 때 3만필, 여말선초 명나라에만 10만필이 징마됐는데, 이 중 6~7할이 제주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제주 사람들은 말 키우기에서 진상.운송 책임까지 졌다. 제주목장을 만드는 데 제주 사람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관설목장은 조선 세종 고득종이 큰 역할을 했고, 사설목장은 김만일이 효시다. 산마장(山馬場.산마를 키우는 목장)은 국내 유일한 관민합동목장이다. 이 때문에 제주목장의 운영 사례는 전국 목장 운영의 기준이 됐다.”
“제주 사람들은 우수한 목양기술을 갖고 있었다. 세계적인 목장지로 부상한 것은 몽골군이 제주에 몽골식 목장을 건설하면서부터다. 섬 전체에 목장을 건설했고, 이것이 조선시대 10소장(所場)으로 발달시키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제주 사람은 말 10필을 주면 1년에 7~8필을 생산하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말에 부여된 책임은 너무 컸다.
말을 잃어버려도 책임을 져야 했고, 목자에 딸린 봉족도 여자를 쓸 정도로 비참했다.
진상과 운송도 목자의 몫이었다.
그 때문에 제주 말의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저절로 제주의 역사를 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의 역사는 말의 역사”라고 단언했다.
마정에 대한 제주사의 중요성 때문일까.
그는 ‘제주도 목장사’를 쓰기 위해 지난 6년간 제주도를 들락거렸다.
“국내 최초로 쓰는 제주 목장사였고, 목장 유산이 남아 있어서 현지답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주도 옛 목장인 10소장을 비롯해 산마장, 공마를 위한 서산장(西山場.일종의 결양목장(結養牧場)), 도서지역의 별둔장(別屯場)을 두루 답사하고, 목장지도 위에 복원해 놓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책이 ‘국내 최초의 제주목장사 연구서’라는 찬사가 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보완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당초 ‘제주도목장사’에 수록될 예정이던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비변사 등록’, ‘마경언해’ 등의 자료가 누락됐어요. 책 분량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이들 자료에 나오는 말 진상 기록을 소상히 정리하고 싶어요. 도표로 처리된 부분이 많은데 이를 보완해 내년 6월께 증보판을 낼 계획입니다. 그리고 도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알기 쉽게 읽는 교양서적도 낼 구상을 하고 있어요. 명색이 말의 고장인데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말 교양서적이 없더라구요. 옛 목장을 복원하기 위해 말 관련 문헌을 수집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어요.”
그의 나이는 올해 80세. 올 봄에는 한국마문화학회를 발족해 회장도 맡고 있다. 말처럼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한국의 마문화 총서를 발간하는 게 그의 남은 다른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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