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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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열 아라중학교 교사/시인>

2011년 새해가 밝았다. 새 밑 한파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했지만 새해, 새 희망으로 가슴을 펴자. 새해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1년이란 단위는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하면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준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런저런 다짐들을 했을 것이다.

밀려오는 일들과 나의 울타리에만 갇혀 나의 내면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한 해가 훌쩍 가버렸다. 못내 아쉬움으로 새해 다짐을 해 본다.

“마중물처럼 살자.”

새해엔 마중을 가는 물처럼 살고 싶다. ‘마중물’이란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 가슴이 마구 뛰었다. 꽤 오래도록 내게 여운을 남겼다. 순우리말로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물’이다. 상수도 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 지하수를 끌어올릴 때 펌프질을 해야 했던 시절, 그냥 펌프질을 하면 물이 올라오질 않는데 한 바가지의 물을 부으면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이때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이다. 펌프가 낡아 헐거울수록 마중물이 더 필요하고 펌프질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얼마나 고맙고 귀한 물인가? 나의 인생에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무엇인가를 원하는데 끌어내질 못한다면 마중물을 부어주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마중물을 기다리고 있는 큰 물결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의 큰물과 다른 사람의 큰물을 끌어올려 줄 수 있은 마중물이 내게 있다면 그건 정말 매력적인 일이 아닌가?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도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 같은 정성이 필요하다. 한 바가지의 물도 귀한 곳에서는 그 한 바가지의 물을 붓는다는 게 당장은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귀한 것을 바치면 더 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마중물은 단순히 한 바가지의 물이 아니다. 정성이고 배려이며 빛인 것이다. 그리고 그 부어진 마중물이 다른 물과 섞여 올라올 때까지 계속 펌프질을 해야 한다.

마중물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새해 내가 실천할 과제다.

나와 다른 사람의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 안에 잔뜩 원망과 고통이 가득하다면 그 누구도 배려하거나 밝혀 줄 수 없다. 내 안의 거울을 깨끗이 닦아야 내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바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이 그 해답을 주었다. 고려시대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의 어록을 모아놓은 책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나에게 주어진 새해 선물이었다. 넘어진 자리, 무너진 자리가 바로 시작이 되는 자리라는 진리를 이 책은 깨닫게 해 주었다. 나의 고통과 실패의 원인은 모두 내 안에 있다.

내 마음 안에는 욕망과 고통이 있는가 하면 그 해결책도 함께 있는 것이다.

네 탓을 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려 내 안에서 문제점을 찾는다면 분명 해결책이 나온다. 우리는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면서도. 내 안이 밝아지면 주위도 밝아진다. 내가 먼저 변하면 세상도 따라 변한다. 모든 건 나로부터 시작된다. 즉, 내 마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 책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을 닦지 않는 사람에게선 향기가 나질 않는다. 더더욱 주위를 밝힐 수도 없다. 내 안의 나를 밝히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면서 배려하는 것, 이것이 마중물이 되기 위한 기본적 자세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2% 부족할 때’라는 말이 있다. 그 2% 부족할 때 서로에게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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