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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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인협회 부회장/소설가>

온 나라 곳곳에서 포클레인이 춤을 춘다. 비록 삽차가 추는 억지 춤이라 해도 그것이 흥겨운 노동에서 비롯된 춤사위라면 구경꾼은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입 안 가득 콧노래를 머금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포클레인의 춤판은 장송의 핏빛 살풀이여서 아프다. 긴장하지 마시라. 1500㎞ 물줄기를 거슬러 벌이는 말 많은 4대강 사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축산 농가의 장례식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산과 들에서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포클레인이 로봇 춤을 추며 언 땅을 파헤치면 트럭에 실린 소와 돼지가 피폭의 흔적처럼 파인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린다. 이 가여운 망자들이 몸을 포개고 서로 마지막 남은 체온을 나누는 동안 다시 또 포클레인의 춤사위가 격렬해진다.

이렇게 언 땅속으로 사라진 가축의 수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직접적인 피해액만도 1조원이 넘었다는 보도다. 이 황망한 사태의 중심에 구제역이 있다. 최초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달포 만에 구제역은 이제 전국으로 확산되어 우리의 축산농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곱씹을수록 화가 치밀지만, 그래도 근래 열심히 포클레인을 풀어 매몰을 독려하고 있고, 집권당의 대변인도 나서서 구제역 확산 이유를 소설가 뺨치는 상상력으로 설명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으니 타박은 훗날로 미루자.

구제역(口蹄疫)은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에 일단 발병이 되면 손쓰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바이러스가 공기에 섞여서 날아가는 경우 바람의 조건에 따라 육지에서는 50㎞, 바다에서는 자그마치 250㎞ 이상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니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예방책은 어떠했을까.

최초 발병한 안동의 경우 농장주가 구제역 발생 국가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그 농장주의 해외여행이 구제역 발병과 상관이 있다면 정부는 예방에 관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축산업 종사자가 구제역 발생 국가를 여행하고 왔다면 당연히 이를 방역당국에서 체크해 제대로 대처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난해 검역을 받지 않고 입국한 축산 관계자의 수가 무려 9400명에 이른다고 하니 잘못되어도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

며칠 전, 나는 TV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화면에는 살처분이 통고된 소에게 마지막으로 먹이를 주는 모습이 비쳤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도록 소를 키우며 살았다는 주인은 한동안 소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소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울먹였다. 마지막 가는 길, 배부르게 먹고 가라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소는 소대로 먹이를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주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너무 애잔하고 딱해서 나는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던 것이다.

구제역이 언제 진정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많은 가축을 매몰하고 보니 이제는 더 매몰할 장소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안락사 시킬 약물이 바닥나 생매장을 감행하고 있다는 가슴 아픈 소식도 들린다. 어디 그뿐인가. 살처분의 죄책감에 사흘간이나 해당 농가에 남아 울면서 사죄의 마음을 전한 어느 방역책임자의 가슴 저미는 고백이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제라도 정부는 책상머리의 주먹구구식 방역대책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라. 지금처럼 죽여서 묻는 방역정책이 아니라 살려서 모두를 웃게 할 정책을 세워 철저히 실행하라. 그래야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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