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미, 아파트에도 자연을 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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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옆집 남자가 죽었다./ 벽 하나 사이에 두고 그는 죽어 있고/ 나는 살아 있다. 그는 죽어서 1305호 관 속에 누워 있고/ 나는 살아서 1306호 관 속에 누워 있다.”

김혜순의 시 ‘남(南)과 북(北)’에서는 아파트가 죽은 몸으로나 들어가게 되는 관(棺)과 다를 바가 없다. 그 관에는 정말 죽은 옆집 남자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나’ 역시 들어가 누워 있다.

시인은 아파트의 직사각형 구조를 두고 차곡차곡 포개지거나 나란나란 덧대어져 있는 ‘관의 행렬’로 아파트에서의 삶을 죽음과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제주에 들어선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단지는 1978년 7월 준공된 제원아파트이다. 그 이후 제주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아파트는 ‘관의 행렬’과 같아서 사람의 온기와 자연의 숨소리를 이젠 접할 수도 없게 되었다. 어느 순간 자연의 선, 곡선(曲線)은 하나 둘 없어지고 인위의 선, 직선(直線)은 도시를 뒤덮고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곱다’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고부라져 있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는 곧은 직선보다는 구불구불한 길이나 산의 굽은 능선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곡선이 주는 치유의 효과다. 직선이 인위적 그리고 도시적인 선이라면, 곡선은 자연의 선이다.

외국인들은 제주의 선을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극찬을 한다.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는 제주의 오름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제주의 선이라 한다. 이러한 제주의 선과 조화를 이루며 제주의 정체성을 계승해 왔던 전통주택의 처마 곡선은 사라져 가고 있다.

하향곡선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제주 초가의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slate roof)으로 바뀌고, 상향곡선의 기와지붕도 개발논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나 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직선 형태의 평지붕이 대신하고 있다.

도시에서 삭막함을 느끼는 것은 초가나 기와의 곡선이 주는 편안함을 떠나 고층 아파트와 쭉 뻗은 도로에서 느끼는 직선의 딱딱함을 접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똑같은 성냥갑 모양, 인간적 척도(human scale)에서 너무나 벗어난 규모, 비슷비슷한 색채의 아파트만 봐도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한다.

수년 전 학생들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의 작품들을 만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과 그가 남긴 수많은 건축물 곳곳에 곡선의 선, 자연의 선, 인간의 선이 있다.

한 예로 카사 밀라(Casa Mila)는 아파트임에도 지중해를 닮아 마치 물결 치는 듯 금방 코끝에 바다 냄새라도 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벽은 반듯하지 않고 원형으로 굽어 있으며, 녹슨 수도꼭지 손잡이, 창문, 창틀까지 세심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세계적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가 설계한 부산 해운대 아이파크 아파트에도 자연의 곡선이 있다. 해운대의 파도와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잎의 우아함, 바람을 머금은 돛과 전통건축물의 처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곡선을 아파트에 담았다.

서울시는 성냥갑 아파트의 퇴출을 선언하였다. 제주에서도 이젠 ‘관의 행렬’을 끝낼 때가 되었다. 직선의 난무에 종언을 고할 때가 되었다. 보편적인 주거형태가 되어 버린 아파트에도 자연을 담자.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공간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자연의 숨소리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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