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문화를 생각한다
돌 문화를 생각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변종태 계간문예‘다층’편집주간/시인>

지난 번 서울 나들이 때의 일이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전철역을 나와서 길을 잘 몰라 서성이다가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마침 자신도 그곳으로 가는 길이니 함께 가자고 했고, 대화를 하면서 제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신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꼭 한번 제주에 가고 싶다고 하기에, 제주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제주의 돌담 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사진을 통해 보았던 제주의 돌담이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한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돌’ 문화는 타지 사람들에게 ‘밀감’ 못지않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쪼아 만든, 제주의 상징인 돌하르방, 사자(死者)들의 영역인 산담, 초가집의 축담, 가축의 출입을 막고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쌓아올린 밭담, 온돌을 만들 때 사용한 구들장을 비롯해, 생활에 필요한 소도구들까지 돌의 활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물론 생활 용구는 다양하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利器)에 밀려 거의 사용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돌담의 경우는 다르다. 시골 골목을 걸을 때, 허리춤 정도 쌓아놓은 돌담은 지나는 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넬 것만 같다.

어렸을 적에 우리 마을에 돌챙이(석수장이를 낮잡아 이르는 제주어) 한 분이 밭담을 쌓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가급적이면 어떤 돌이든 망치를 거의 대지 않았다.

깨지 않고, 다듬지 않고도 그렇게 신기할 정도로 반듯하게 돌담을 쌓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나에게 한 마디 건넸다. “돌은 팔모라, 둥그리당 보민(이리저리 돌리다보면) 맞는 자리가 셔(있어). 사름(사람)도 매 한가지라, 쓸모 없는 사름은 어서(없어)” 그야말로 전문가다운 삶의 철학을 생생한 음성으로 들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들은 이야기임에도 아직까지 그 음성, 그 확신에 찬 어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이 쌓은 돌담은 한 군데를 흔들면 좌우로 3~4미터씩 흔들리면서도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3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분이 쌓은 돌담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힘든 노동일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나무나 편리한 시멘트 문화가 섬을 덮기 시작하면서 그 분들이 일거리가 점점 없어지게 되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올레길을 걷다가도 블록으로 담장을 두른 곳을 가다보면 왠지 어색하고, 제주가 아닌 다른 동네를 지나는 듯하여 속상하다. 더구나 지난 해 제주가 세계에서 유일한 유네스코 선정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자연유산 3관왕이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온 섬이 축제분위기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간다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문화유산이라는 것도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을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돌 문화에 대해 그 유지가 썩 필요함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돌담을 헐어내고 블록으로 담장을 쌓는 곳이 조금씩 늘어 가는가 싶더니, 어떤 마을에서는 아예 돌담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시멘트로 포장하고 쌓아올린 마을에서는 제주의 정겨움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제주에 많고 많은 바람, 그 바람이 돌담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제주의 소리를 추억 속에서만 들어야 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여 가슴이 허전해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