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진실만 알멩이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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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장

제주도민의 숙원인 4.3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진상조사 작업이 한창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4월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된다.
이에 제주일보는 창간 57주년을 맞아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원순 기획단장(47.변호사)을 만나 보고서 작성의 입장과 원칙 등에 대해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그가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서울 가회동의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1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박 단장은 “4.3진상보고서의 작성은 주의나 주장을 완전 배제하고 4.3의 진실만을 알맹이로 기록하는 작업이 될 것이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첫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 기획단장과 가진 인터뷰 내용.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묻혀온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의 근거가 될 보고서가 본격적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인 소임을 맡은 진상보고서작성기획단장으로서 어떠한 입장을 갖고 추진하고 있습니까.

▲늦은 감이 있지만 4.3의 진실은 후세대와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밝혀져야 할 중요한 사안이고 우리 세대는 이를 정리를 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예산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많은 애로사항이 있고 제주도민들 입장에서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4.3의 진실을 찾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4.3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어렵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해 견제하고 설득해 원만하게 합의를 도출해 4.3진상조사보고서를 정부와 국민 앞에 내놓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상보고서의 작성에 있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인권 침해 및 역사적인 사실과 진실에 대한 규명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의 대원칙입니다.
4.3의 진실이라는 대원칙 앞에 정치적인 입장이나 주장, 이해관계는 전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유족회의 입장이거나 우익단체, 정부기관, 도민 등 어느 쪽에서 주의.주장 등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4.3의 진실에 전부 양보돼야 할 사항들입니다.
진실 앞에 타협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위해 4.3과 관련해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는데 4.3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는 확보됐습니까.

▲세월이 오래 흐르다 보니 군과 경찰의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고 불충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일부 군경기관의 자료는 개인이 갖고 있기도 한데 예산이 불충분해 이들 자료를 매입하지 못하고 있어 유족단체나 도민들이 십시일반 모금해 자료를 매입하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다만 가해자의 입장에서,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당시에 경험했던 사실들에 대한 증언을 채록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증언채록은 지금 하지 않으면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될 수 있으면 4.3을 경험했던 모든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증언채록이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또 4.3의 진상을 규명할 결정적인 자료도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령 관련 자료도 확보되고 국내.외에서 수집된 광범위한 자료들도 4.3의 진실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들입니다.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시각을 달리하는 세력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있지 않을까 우려되는데 이 문제를 어떠한 원칙과 방식으로 조정해 나갈 것입니까.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과 4.3위원회 내부에도 다양한 계층과 세력이 포진해 있어서 서로 다른 입장이 존재하고 표출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4.3의 진실 앞에 자신이 속한 지역과 출신, 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진상을 조사하고 규명하는 작업을 방해할 뿐입니다.

제가 기획단장으로 있는 한 4.3에 대한 주의와 주장은 4.3의 진실을 앞설 수 있는 가치들이 아니며 수용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진상조사보고서는 관계법률에 의하면 4.3위원회의 결정이 있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4.3위원회에서 결정이 장기간 미뤄진다거나 유보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4.3진상조사보고서의 작성과 심의, 의결은 법률적으로 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기한내에 처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획단에서 작성된 보고서는 정부측에서도 수용될 수밖에 없으며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대결을 해서라도 결정을 지어야 할 사항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4.3의 진실 위에 놓일 수 있는 가치는 없으며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타협은 있을 수 없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은 진상조사보고서 외에 정부에 보내는 권고문도 제출할 계획인데 권고문이 4.3위원회의 심의,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이 4.3의 진실을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고 4.3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부의 장기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권고문도 정부와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권고문에는 정부가 당장 나서서 추진해야 할 과제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 될 것입니다.

-4.3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에 대한 여러 나라의 진상조사보고서를 검토하고 분석했는데 다른 나라의 진상보고서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공통적인 사실은 무엇입니까.

▲정의는 엄중하게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긴 역사적인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그렇게 되고 과거는 언젠가는 청산되는데 얼마나 조기에 이뤄지느냐,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결되는가가 차이점일 뿐입니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한 역사적인 사실도 500여 년이 지난 현재 재규명되고 있으며 서구열강에 의한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문제도 현재 배상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발생한 대규모 실종사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문제,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책임규명 등도 전부 현재진행형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국제법학자이자 초대 UN인권위원회 책임자인 테오반 보벤은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선 진실의 공개와 사죄, 책임자의 처벌과 보상,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을 제시했습니다.

4.3에 대한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인도적인 범죄에 대해선 시효가 없다는 것이 국제법상의 관례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4.3이 발생했던 당시는 미군정 시기였는데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미군정의 역할과 책임문제도 어느 정도 규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4.3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비록 4.3 당시 미군정에서 이승만 정부로 넘어갔으나 군사고문단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제주도에서 대량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를 막지 않은 점은 분명히 미국의 책임입니다.

-현재 제주도민사회는 물론 다른 입장을 가진 단체와 세력 사이에 4.3피해자의 범위에 대해 논란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선 제주도민들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4.3 당시 남로당의 중요직책을 맡은 사람을 피해자로 규정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형사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고 ‘입증책임의 전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명백한 가해자임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피해자임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포괄적으로 피해자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4.3이 발생했을 당시는 우리나라 전체가 비슷한 시대적 상황과 분위기였는데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상흔이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4.3진상보고서 작성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 같은 진상조사와 피해자명예회복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는데 4.3의 보편성 측면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당연한 문제입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수백만명이 제주도와 비슷한 상황에서 대량으로 학살되는 역사적 사건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합리적인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고 후세대를 위한다면 역사의식과 인권침해의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과거를 청산해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4.3의 진상조사작업은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 때문에 4.3의 문제는 제주도라는 지역의 문제,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적인 문제이고 관심의 대상입니다.

-4.3진상보고서 작성작업이 사건경험자들이 생존해 있고 이념대립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기획단장직을 어떻게 해서 맡게 됐으며 현재 개인적인 심정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보면 저는 4.3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정부에서도 4.3의 진상조사작업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저는 1980년대부터 시국사건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인권문제와 역사의식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만큼 저는 이념적인 입장이나 경험적인 입장에서 제기되는 주의와 주장에 대해선 앞서 말한 대로 4.3의 진실이라는 대원칙으로 역사적인 책임을 해결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작업이 현재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떤 단계에까지 왔고 앞으로 추진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도민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지요.

▲4.3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은 민간인 10명과 정부기관의 당연직 5인 등 15명으로 구성되고 집필자로 5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각 집필자들이 진상보사보고서 초안을 작성 중이며 10월 중순께 초안을 갖고 토론을 벌이고 12월 말까지 초안을 완성해 3월 말까지 4.3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의 심의, 결정을 받아 확정지을 계획입니다.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 것입니까.

▲무엇보다도 역사가 오래 진행되다보니 4.3에 대한 자료가 흩어져 있어 이를 수집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제주도민들도 지금 단계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처벌이 가능한 것도 아니나 4.3 당시 책임을 지닌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를 하는 것이 후대를 위해서도 당당한데 이런 것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진상조사와는 별도로 4.3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치에 대한 대량학살에 대한 보고서를 보면 해당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4.3의 피해는 물리적인 피해 외에도 정신적.심리적 고통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실보고서는 4.3의 상흔을 치유하는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행정적으로,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4.3의 역사적 교훈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는 기념관과 박물관도 제대로 지어 후세대에 감동적으로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에서도 역사 속에 발생했던 갈등과 희생에 대한 기억을 조명하는 굉장한 조형물을 만들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있는데 제주도 역시 서두르지 않고 이런 점을 고려해 모두 만족할 만한 4.3공원과 기념관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조속한 시일내에 이뤄지길 고대하는 제주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시지요.

▲4.3은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국가차원의 문제이고 이 때문에 특별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제주도민들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보내주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을 하는 데 큰 동력이 되는 것이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비판과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4.3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고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진실의 입장에서 한치의 타협도 없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박원순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장은>

박 단장은 경기고를 졸업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으나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된 후 지금까지 법조, 언론, 학계, 시민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부당한 인권침해와 왜곡된 역사와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왔다.

그는 법원사무관시험 합격(1978년), 사법시험 합격(1980년), 대구지검 검사(1983년), 변호사(1983년 개업)라는 경력 외에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1983년)한 역사학도이기도 하다.

그는 법조인이면서도 1986년에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한겨레신문 논설위원(1989~1991년)을 거쳐 카톨릭대 강사(1995년), 참여연대 사무처장(1995년~2002년 2월)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감사원과 국회내에서도 각종 제도개혁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2000년 9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운영위원장(2001년 2월),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2002년 9월)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는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의 정착을 위해 세운 아름다운재단의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기업과 개인 소득의 1% 기부운동이라는 사회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이 같은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도 ‘저작권법연구’, ‘국가보안법1.2.3’, ‘일본전범연구’, ‘한국현대사의 과거청산연구’, ‘세기의 재판이야기’,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일본시민사회기행’, ‘한국의 시민운동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등 수많은 책을 쓴 저술가로서도 이름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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