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해 설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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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인 새해 정월 초하룻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작’은 무엇인가 우리를 설레게 하고 약간은 들뜨게 한다. 한자어로 설은 원단(元旦), 원일(元日), 세수(歲首), 세초(歲初), 신원(新元), 신일(愼日), 연두(年頭), 연시(年始)라고 부르지만 역시 설날이라는 말이 우리에겐 어릴 때 친구처럼 정겹다.

조선시대에 의정대신(議政大臣)들은 설날 아침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나가 조하(朝賀)를 올렸다. 이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며,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세찬으로는 떡국(餠湯)을, 세주로는 초백주(椒栢酒)·도소주(屠蘇酒)가 나온다. 떡국은 손님 대접에도 쓰고 제사에도 쓰여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설날은 민간에서 수천년 동안 지켜 내려온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자연히 민족의 얼이 배어있다. 이 때문에 일제 강점기에는 설날을 없애고자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섣달 그믐전 1주일 동안 떡방아간을 못돌리게 하거나 설날 아침 흰옷을 입고 세배를 가는 사람에게는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옷을 더럽히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해방 후에도 설날은 한때 존폐위기를 맞았지만 지금까지 민족의 명절로 그 의미가 빛바랜 적이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 귀성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국제공항과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은 예외없이 고향을 찾은 귀성객과 설연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물결 속에 잠긴다. 그러나 올해는 국민전체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이상한 설을 경험하고 있다. 구제역 여파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연일 담화문·서한문을 동원해 설 연휴 귀향 자제를 호소하느라 난리다. 향우회나 축산단체들도 출향민들에게 고향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읍소하고 있다.

오죽하면 ‘고향이 걱정되고, 고향을 사랑한다면 고향을 더욱더 멀리해 주는 것만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 되버렸다. 다행히 아직까지 제주는 구제역에 오염되지 않았지만 이번 설 연휴기간이 제주를 구제역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건 설날은 생업에 따라 각기 따로 생활하던 가족이 다 모여서 조상을 기리고 가정의 화목을 다지며 웃어른을 존경해 섬기고 이웃과 소통하는 우리민족의 미풍양속의 맥을 이어가는 명절임에 틀림없다. 비록 올해 설은 사상 최대의 구제역 파동 등으로 유난히 춥고 우울하지만 말이다. 이럴 때 새해의 바람과 소망을 살포시 얹은 인사말로 덕담을 나누며 어려움을 견디면 어떨까 싶다.

조선조 말기인 순조(純祖) 때의 학자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설날에 친구나 나이 어린 사람을 만나면 과거에 급제하라(以登科), 벼슬에 나아가라(進官), 아들을 낳아라(生男), 돈 많이 벌어라(發財) 등의 말을 함으로써(爲德談以) 서로 축하했다(相賀)’고 설 풍속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표현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야지, 좋은 직장 얻기를, 올해는 결혼하시게, 사업 번창하시길’ 등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설은 함께 어울리는 날이다. 가족과 친지와 이웃과 함께 말이다. 이번 토끼해 신묘년 설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덕담을 실컷 나누자. 덕담이야말로 상대방이 잘 되기를 비는 인사말이다. 덕담 속에 남에게 희망과 용기의 씨를 뿌리면 받는 사람은 물론 자신도 무한한 가능성을 성취할 수 있는 씨가 된다.<고경업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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