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을 통한 제주의 50년 전후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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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중문상고 교감/수필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지났지만, 앞 절기인 입춘(立춘)을 맞아 제주의 과거와 미래를 엿보고 소원했던 바를 적고자 한다. 새 철에 빌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탐라국시대부터 전승되다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단절, 1999년부터 새롭게 발굴·복원된 입춘굿놀이를 올해에도 보러 갔다. 필자도 덕담·낭송마당에 참여하였으나, 혹한 때문에 예년에 비해 방문객들이 적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참가자들의 열성으로 다채롭게 치러지고 있었다.

탐라왕께서 친히 밭을 갈고 땅을 일구던 것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낭쉐(木牛)가 관덕정 마당에 등장하여 눈길을 끌고 있었다. 올 입춘굿놀이에서 수필낭송을 제의받은 나는, 천지연에 시비가 있는 서귀포 출신 김광협 시인이 1984년에 발간한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란 시집에서 당시의 세시풍속을 잘 표현한 ‘오늘은 정월 멩질’이란 시를 골랐다.

오널은 정월 멩질/ 우리 어멍 멩질이엔/ 이디 저디 바눙질허곡/ 밤?좀도 자지 아니허멍/ 막개질도 허여그네/ 맹근 미녕옷을 입엉/ 종손집이 말젓할으방집이 족은할으방집이/ 세배강 절을 허곡/ 큰집 말젓집 족은집 우리집/ 상에도 절을 허곡/ 이 집 저 집 세배 댕기단 보나네/ 먹음도 경 하영 먹어저싱구라/ 설세 제왕 못살키여/ 미녕옷에 대천바당 설세를 허여부나네/ 입을 옷이 어서져서(부분 발췌)

위의 시를 읽으며 입가에 배시시 미소 짓는, 보릿고개를 넘은 이들을 그려본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턱없이 모자란 시절, 배불리 먹고 세뱃돈도 받는 날이기에 아이들은 명절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에 탐라 도처에 산재한 산수절경이 무슨 도움이 되었으랴. ‘새 철드는 날’엔, 여자들은 아예 바깥출입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격세지감이다. G20 경제대국, 스포츠 강국, 민주화 성공에 세계인들은 우리를 우러러봄직도 하다. 앞으론 유네스코(UNESCO) 덕을 보리라는 예감도 든다. 세계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는 특별한 곳으로, 제주섬의 생물권보전지역, 자연유산, 지질공원을 지정·등재·인증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칠머리 당굿 등 무형문화재와 제주어도 최근에 등재·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힘입어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도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제주인의 자긍심은 한껏 고무되고 있음이다.

제주섬은 생존의 양식을 구해야 했기에 앞마당의 바당과 뒷마당의 오름을 사모했던 신화의 땅이고 유배의 섬이고 수난의 현장이었다. 절해고도와 가렴주구가 말해주듯 제주는 여러 아픔이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아픔을 승화시키려 탐라선인들은 입춘굿놀이와 같은 질펀 나는 놀이판들을 열었으리라.

험난한 역사의 산등성이를 돌아 이제 제주는, 특별자치도로 자리매김해 가는 중이고, 유네스코에 등재·인증된 5관왕의 타이틀에 힘입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김광협 시인은 위의 시에서 우리에게 50년 전 제주의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50년이 지난 후 제주의 모습은 어떠할까? 과거의 아픔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승화되고, 입춘굿놀이는 어떻게 우리 후손들에게 전승될까?

후손들에게도 과거에 배인 속살까지도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현재와 미래의 밭에 힘찬 쟁기질을 할 때, 진정 우리는 역사의 과원에서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는 농군이 되리라. 세방화(세계화·지방화)를 선도하는 섬으로, 평화와 다양화가 공존하는 섬으로 자리매김함이 입춘에 소원하는 우리의 바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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