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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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숙 금능꿈차롱작은도서관 관장/시인
초등학생 시절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던 내게 선생님은 부모님 이상이셨다. 몸이 약해 교실에서 걸핏하면 쓰러졌던 나를 업고 교무실로 데려가거나 정성스레 간호하며 깨어나기를 기다려 주셨던 선생님.

하루는 원양어선을 타시던 숙부님께서 보내주신 마른 오징어를 먹다 문득 선생님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자상하게 대해주시는 선생님에 대한 어떤 감사의 마음이었지 않나 생각이 든다. 오징어 한 마리를 밀가루 속지로 싸고 다시 냄새가 나지 않게 비닐로 몇 겹을 두른 뒤 책가방 속에 넣었다. 이 오징어를 받고 선생님께서 기뻐해 주실까? 처음으로 선생님께 무엇인가 드릴 수 있다는 기쁨에 하루 종일 설렜다. 하지만 내성적이었기에 마음만 가득할 뿐 쉽게 오징어를 꺼내 드릴 수는 없었다. 혹시 선생님께서 싫어하시면 어쩌나 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일주일을 책가방 속에서 보낸 오징어를 용기 내어 선생님 앞에 내 놓던 그 날을 난,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활짝 웃으시며 너무도 기쁘게 받아주셨던 선생님. 그렇게 난 선생님을 통해 세상에 조금씩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얼마 전 세 살 터울인 첫째와 둘째가 나란히 졸업을 하였다. 졸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을 마감하며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아무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음이 고마워서인지 둘이 서로 의논하며 선생님의 선물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아껴 모아둔 용돈으로 문구점과 마트를 다니며 선물을 고르고 정성스레 포장을 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들뜨고 설렌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물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한 말을 아이들을 보면서 실감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졸업식에 가지고 갔던 선물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청렴을 강조하는 교육시스템에서 선물을 줄 기회조차 놓치고 만 것이다. 잔뜩 풀이 죽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까지 답답해졌다. 그 선물상자는 결국 주인을 찾지 못해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책상 위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이제 다시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한다.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아이들이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그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은 다시 꿈을 키우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또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지식을 전달받고 세상과 호흡하는 법도 배운다. 이렇게 마냥 받기만 하는 선생님의 사랑 앞에, 올 한해는 아이들이 그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소박하지만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촌지나 부도덕한 거래를 예방하자는 ‘청렴교육’이 현실에 얼마나 필요한 지는 잘 알고 있다. 또 지금까지 그런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도 안다. 그래서 ‘청렴’과 ‘감사의 마음’ 둘 중 무엇이 우선일까? 라는 생각 앞에서는 잠시 멈칫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른이 개입되지 않은 아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는 그 감사의 마음이 ‘청렴’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초라한 선물 하나가 삼십년 넘게 선생님과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는 내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힘들게 학교를 다녔기에 자칫 빛이 바랬을 학창시절의 추억이 너무도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시간이 흘러 선생님과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 서툴지만 받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그 마음이 엄마의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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