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고유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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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이 국가의 체제(體制)를 갖추어 가지고 수천년 동안의 연면한 역사를 계속하여 왔다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지마는, 한 민족이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또 그 언어를 기록하기 위하여 자기 민족의 손으로 고유한 문자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더욱 흔한 일이 아니다.’

국문학의 태두(泰斗) 故 이희승 박사가 1961년 저술.편집한 ‘국어대사전’(민중서림) 초판 머리말의 첫 부분이다.
그는 평생을 한글만 연구하다 간 대표적 한글학자요, 대표적 국어사전 편저자다.

그는 한글의 발전뿐 아니라 한글을 통해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 긍지를 갖도록 하는 노력을 다해 왔다.
평소 우리 말과 글은 고도의 문화적 가치, 그 자체라며 한글을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 박사의 한글 예찬론은 1980년대 중반 어느 세밑, 신춘대담을 위해 서울 종로 자택을 찾아간 기자에게도 이어졌다.
당시 미수(米壽.88세)의 노구에도 2시간여에 걸친 긴 대담에 기꺼이 응했던 기억이 새롭다. 식지 않는 한글사랑 열정 때문이었다.

“모방문화는 영원할 수 없어요. 모방의 천재라면 역시 일본이지요. 그들의 고유 음절문자라는 ‘가나’만 보아도 한자를 빌어 만든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어요. 한자의 일부를 생략 또는 초서화(草書化)해 일본 글을 탄생시킨 것이지요.” 이 박사는 한글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이고, 창조적인 글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특히 창조성이 뛰어난 민족인만큼 반드시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결국 이 박사가 한글을 통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한글 그 자체의 우수성은 물론 어느 민족보다도 뛰어난 우리 민족의 창조성이었다.

국민 각자가 한글을 만든 정신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면 모방문화가 주도하는 일본 부럽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오늘 또 다시 한글날을 맞는다.

물론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창조적 정신을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어주는 날로서의 뜻도 깊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10여 년 전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뒤 우리 말과 글의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래저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희승 박사의 한글사랑 정신이 더 없이 그리워지는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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