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목(連理木)에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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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열 한림중학교 교사/시인
창밖으로 비양도가 보인다. 바람이 부는 날엔 하얀 파도가 섬을 안고 출렁인다. 3월 2일 새로 옮긴 학교로 출근을 했다. 첫날, 왠지 바람도 낯설었다. 이 낯설음을 알아차렸는지 교정의 수선화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얗고 노란 꽃잎들 목을 길게 빼고 향기로 웃어주었다. 수선화가 나의 첫 친구가 되었다.

수선화 너머로 큰 벚나무 한 그루, 나의 시선을 끈다. 앙상한 가지에 몽글몽글 영그는 꽃망울, 지금 그 자그마한 꽃망울 속은 얼마나 분주할까를 생각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 부지런에 함께 동하고 싶어짐은 봄의 기운 탓이리라.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 탓에 모두들 간절하게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연리목(連理木)에 관한 것이었다. 연리목에 관한 글을 읽은 후 ‘연리목과 나의 삶’이 화두처럼 긴 겨울을 따라다녔다.

비자림의 연리목도 유명하지만 절물자연휴양림 ‘장생의 숲길’ 산책로의 연리목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장생의 숲길’의 연리목은 고로쇠나무와 산벚나무가 서로 만나 하나의 나무가 된 것이다. 이런 나무를 흔히 ‘사랑나무’라고 한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큰 줄기가 맞닿으면 연리목(連理木)이 되고 나뭇가지가 맞닿아서도 일어나는데 이를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연리근(連理根)은 뿌리가 만나는 경우인데, 베어버리고 남아 있는 나무 등걸이 몇 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경우는 옆의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양분을 받는 경우라고 한다.

사랑나무라고 불리는 이런 나무들은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큰 아픔으로서 얻어진 결과다. 두 나무는 서로를 심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껍질이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 맨살이 그대로 맞부딪히고 갈라지는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감수해서 얻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분 공급의 유세포가 서로를 섞어 공동으로 살아갈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인데,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셈이다.

이렇게 두 나무의 세포가 이어지기 위해선 적어도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아픔이 없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 ‘마음의 공유 공간’ 말이다. 부부 사이도 그렇고, 연인 사이도, 친구 사이도, 직장 동료 사이도, 교사와 학생 사이도 그럴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이해하고 용서하고 편해지기 위해선 마음의 공유 공간을 넓혀야 한다. 마음의 공유 공간이 적을 때 서운함과 불신, 원망을 낳는 것이 아닐까? 연리목이 되어도 두 번은 되었을 나의 결혼 생활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고통을 주고받으며 감내하며 마음의 공유 공간을 만들었을까를 자문해보았다. 그리고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도 얼마나 함께 나눌 마음의 공간을 만들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많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연리목에서 많은 걸 배운 겨울이었다.

연리목이 부부의 사랑을 상징한다면 연리지는 연인 간의 사랑을, 연리근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상징한다고들 한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사랑법, 이번 봄엔 마음의 공유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겠다. 한 걸음 물러서면 나무의 새순과 예쁜 꽃들이 더 많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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