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디자인, 배려의 마음을 도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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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어느 한밤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머리에는 물동이를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걸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물었다. “정말 어리석군요. 앞도 보지 못하면서 등불은 왜 들고 다닙니까?” 그가 말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게 하려고요. 이 등불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인도의 영적 스승인 ‘바바 하리 다스(Baba Hari Dass)’가 <마음을 다스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쓴 이 일화는 진정 ‘배려하는 마음’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도시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자동문’이다. 특히 공공시설이나 쇼핑센터와 같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에 주로 설치되어 있다. 다른 문도 많은데 하필 왜 자동문일까?

양손 가득 무거운 짐을 들었거나 아이를 안았거나 유모차를 밀면서 건물을 나설 때 직접 손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면 매우 불편하고 난감할 것이다. 하지만, 대신 그 앞에 다가서기만 해도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면 어떨까?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아도, 품에 안은 아이의 안전을 염려하지 않아도 문을 가뿐히 통과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탔거나 손이 불편한 장애인, 힘이 약한 노인과 어린아이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자동문이 설치되어 있으면 신체적 제약이 없는 사람들 역시도 더 편리하게 통행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흐름이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차별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쉽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지향하는 디자인 개념이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배려하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남모르게 감수해왔을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면 특정한 사람에게뿐 아니라 자연스레 모두에게 골고루 그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린다고 실제 거창한 것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표지판, 수도꼭지, 스위치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게 대부분이다. 요즘 많이 만날 수 있는 시간표시 신호등도 그렇다. 시간표시 신호등은 보행자에게 남은 시간을 알려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연령이나 신체적 상태를 고려해 여유롭게 시간을 조절하며 건널 수 있다. 교차로의 X자형 횡단보도는 대각선 방향 건너편으로 이동할 때 두 번에 걸치지 않고 단번에 건널 수 있게 해준다. 시간도 단축되고 이동해야 하는 길이 역시 짧아진다. 교통 약자들뿐 아니라 길을 건너는 모두에게 더없이 고마운 배려이다. 이처럼 ‘유니버설 디자인’은 작은 변화만으로도 모두에게 큰 만족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배려’를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직은 장애인이나 노인 등 대상을 한정지어 시설을 재정비하거나 기술을 도입하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하철 일반 개찰구 사이에 조금 더 넓게 장애인 전용 개찰구 하나를 따로 만들어놓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하는 식이다. 물론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장애인은 장애인대로 비장애인은 비장애인대로 ‘별도’로 구분하여 해결하는 이분법적 방식은 장애인들로 하여금 오히려 다양한 도시민들과의 접촉을 막아 그들의 활력을 반감시킨다.

그렇기에 앞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람의 구분 없이 도시민들을 통합할 수 있는 범용 디자인으로 그 쓰임과 적용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살기 좋은 도시, 굿 시티를 위한 굿 디자인으로 우리의 유니버설 디자인이 발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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