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과 스티브 잡스 그리고 한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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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나인브릿지 대표이사/세계 100대 골프장 선정위원
여섯살 때 이웃에 껌과 콜라를 팔아 돈벌이를 시작했고, 일곱살 때엔 채권에 관한 책을 선물로 달라고 산타클로스에게 기도했다. 열살 생일 기념으로 소풍간 곳은 뉴욕 증권거래소였다.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워런 버핏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불우했던 시절을 극복한 소년은 이제 세계에서 세 번째 갑부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사나이, 그는 투자하는 주식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증권계 ‘마이더스 손’이다. 그의 재산은 자그만치 500억달러. 우리 돈으로 60조에 이른다.

그가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그는 돈버는게 결혼생활 보다 쉽다고 했다. 한국 주식의 어떤 종목에 투자했을까 잔뜩 귀를 쫑긋거렸던 국내 투자가들에게 그는 돈을 잘 버는 팁 하나를 남겼다. “군중을 따라다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렇게 부를 얻은 대표적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IT의 귀재 스티브 잡스. 그도 워런 버핏만큼 어려운 소년기를 거쳤다. 고아로 태어나 중산층 집안에 입양됐고, 5살 때 기계 만지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던 그는 학교 생활에 적응못해 중등교육도 다 채우지 못했다. 입학 6개월만에 대학을 중퇴한 뒤 단식과 채식주의 등 아시아문화에 심취해 인도, 티벳트로 방랑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한때는 마약까지 복용했다.

괴짜의 삶을 청산하고 돌아온 그는 21살 나이에 친구 워즈니악과 함께 사업자금 1300달러로 애플의 신화를 일구었다. 세계적 대기업 중의 하나인 애플이 고작 몇 달러를 벌기 위해 잠깐씩 컴퓨터 일을 하던 두 명의 히피족에 의해 차고에서 우연히 시작되었던 것이다. 매킨토시-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잡스의 신화는 그를 돈방석에 올려놓았다.

2007년 1월 9일 잡스는 까만 갭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애플 신상품 출시 기념행사장인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엑스포에 등장했다.

이날 그가 가로 61㎜ 세로 115㎜ 두께 11.6㎜ 무게 135g인 이 작은 아이폰을 선보일 때만 해도 전세계는 스마트혁명이 가져올 충격의 크기를 상상도 못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 생활양식과 삶의 질은 물론 사람의 생각까지 바꿔놓았다. 한 천재의 창조성이 개인을 넘어 전인류에게 빛을 발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워런 버핏과 스티브 잡스는 어려웠던 어린시절, 세계 3위와 110위로 세계적 갑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둘에게서 발견되는 특별한 공통점은 창조적 예견력과 혁신적 사고이다. 그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둘은 ‘남이 가는 길이 아니라 늘 새로운 자신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얼마전 제주한라대학으로부터 특강을 요청 받은 적이 있다. 제주 나인 브릿지를 한국 최초 세계 100대 골프장에 선정되게 한 CEO의 남다른 경영노하우를 듣고자 했던 것 같다.

특강전 잠깐 총장실에서 커피타임을 가지는 동안 벽면에 걸린 ‘혁신’이란 휘호가 눈길을 끌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공식 휘호를 쓴 세계적 명필가 주지펑씨의 작품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혁신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기업은 빛의 속도로 바뀌는 데 대학은 낮잠 자고 있다”고 따끔한 질타를 한바 있다.

다행히 대한민국 최남단섬 제주의 한 작은 대학에서 야심찬 혁신의 기운이 일고 있다.

모쪼록 새 봄의 전령처럼 남쪽에서 부는 혁신 바람이 안주와 타성에 젖은 한국 대학사회를 바꿀 훈풍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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