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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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 누구와도 어울려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였다.

따라서 그 시대의 직장인은 순한 양인지 노예인지는 모르나 상사(上司)의 명령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수행할 뿐 아니라, 상사의 마음을 미리 읽고 알아서 기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었고, 그것이 출세의 지름길이었으며, 출세한 자를 우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상사의 입맛에 따라 변하는 사람을 더 이상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구성원의 화합을 깰지는 몰라도 돌출적일 필요가 있다.
돌출은 곧 개혁이다.

이런 돌출적인 사고가 쌓이고, 이렇게 쌓인 돌출적인 사고들 간에 우열을 가려 우월한 것을 채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돌출적인 사고는 그 사회공동체를 맡은 수장(首長)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결코 상사에게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거나 출세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가 없으며, 차라리 주위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의 머리에서만 나오는 법이다.

따라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녀노소, 교육 정도, 상사에게의 복종 여부 등에 관계없이 구성원 모두의 생각을 존중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제왕적 지도자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쓴 소리 하는 사람을 제거하며, 노예와도 같은 충견(忠犬)만을 주위에 두고 자기들 몇몇만 끼리끼리 놀아난다.

특히 선거를 통하여 수장이 결정되는 공동체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여, 구성원은 출세하기 위하여 항상 수장의 눈치를 살피고 그 앞에서 광대가 되어야 한다.

요사이 신문을 보면,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거짓말을 하여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그들 중에서도, 그나마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우두머리라도 해 보겠다고 하니 그런대로 보아줄 만하다고나 하자.

그러나 그런 왕초의 주위를 서성대면서 충견이 되어 보겠다고 안달하는 사람들은 그저 불쌍하기만 하다.

진실을 알고 있을 당사자는 무엇 때문인지 그저 말이 없는데, 자기가 언제 보았으며 무엇을 안다고 ‘절대 그런 적
이 없다’고 언성을 높여 항변하니, 왕초의 비위를 맞추어 훗날 한자리 구걸하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랴?
양지를 찾아 왕초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본래 정의라는 것도, 의리라는 것도 없다.

단지 그들의 왕초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정의이고, 왕초가 지시하는 것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진실이고 의리이다.

도덕시간이면 교과서를 통하여 배우는 정의와 진실은 그저 시험문제의 정답일 뿐이며, 내가 한자리 얻을 수 있는 것만이 실제 사회의 정의와 진실인 것이다.

본인은 정작 능력이 없는데 사람들이 능력이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강연이나 원고 등을 부탁하면 그것 같이 괴로운 일이 없어서 그 자리를 피하려고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며, 나의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는 앉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와 같이 하찮은 시골의 훈장도 아는 것을 높으신 서울의 고관들께서 모르다니, 도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다지도 철면피가 되었을까?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더니, 아무리 욕하여도 훗날 양지를 찾을 수만 있다면 못하는 일이 없음일까?
우리의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서민들이 본받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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