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범종소리
시인과 범종소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관후 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소설가
‘가우웅/ 상처를 안고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어루만지며/ 부르튼 천수(千手)로 물고기를 집고 넘어/ 철썩 사르르/ 무성(無聲) 무색(無色)이 되어 찾아온 임의 노래/ 짭짤하고 축축한 그, 눈물 속에서/ 범종이 운다// 가우웅’ -「한담리 바닷가에서 범종소리를 듣다」 부분

범종(梵鐘)은 절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차는 종이다. 시인은 매일 새벽 범종을 친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신이 치는 범종이 아니라 멀리서 범종소리가 듣고 싶었다. 절에 틀여 박혀 무릎 꿇고 치는 범종이 아니라 일상사에서 그 애틋한 범종소리를 들으며 종교적 심성을 발휘하고 싶었다.

시인 김성주가 두 번째 시집 『구멍』을 상재(上梓)하였다. 그는 수운교 정위사이다. 그의 첫 시집 『비·바람의 길』에서 ‘비’는 동학의 교주이자 천도교의 창건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를 말하는 것이고, ‘바람’은 수운의 제자들을 상징한다.

시인은 종교적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종교시를 거부한다. 시적 상상이 종교적 상상을 보조하는 구실을 담당함도 거부한다. 시인은 한담리 바닷가에서 범종소리를 듣는다. 시인의 눈에 비친 한담리 바닷가에서 듣는 파도소리는 그냥 뭇사람들이 듣는 파도소리가 아니다. 시인의 임무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상처를 안고 달려오는 물고기들을 어루만지고, 종교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아무 소리도 아니며, 아무 색깔도 아닌 아아 사랑하는 임의 노래가 시인의 눈물 속에 고이고, 그래서 범종이 운다.

우리 제주시단(詩壇)에도 많은 시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시인들이 탄생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집들이 배달된다. 이제 대한민국은 시인공화국이다. 그 동안 과작(寡作)이면서 탁월한 시를 써온 김성주 시인은 오랜만에 두 번째 시집을 탄생시켰다. 아마 시인은 그가 치는 범종이 아니라 새로운 범종소리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대웅전 계단을 내려온 두 여인이 화엄의 벚꽃 길을 걸어간다 마주보는 눈길마다 미소가 번진다 첫사랑에 달뜬 연인 같다// 어린 핏덩이도 울부짖던 어미도 참 많이 부딪히며 흘러온 이십여 년 두 줄기 세월이 나란히 화엄 속을 거닐고 있다’ -「화엄의 그늘」 부분

화엄(華嚴)은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하는 일이다. 너무 아프고 시린 것이 화엄의 길이다. 김성주 시인은 오늘도 화엄의 길을 걷고 있다. 수운교는 수운의 현신(現身)으로 믿는 종교이다. 시인은 오랜 방황 끝에 수운을 만났다. 수운은 억조창생(億兆蒼生)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이상과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비전을 동시에 제공하는 영성의 지도자이다. 자기 몸 속 있는 초월자인 ‘한울님’ 곧 ‘천도(天道)’를 설파하였다. 모든 종교의 맥이 흐르는 사랑과 그리움, 열망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시인과 수운의 만남은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수운교 선배들이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시인은 시를 통하여 참여정신을 발휘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종교시가 특정한 종교의 교리나 신앙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직접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시는 창조적 능력을 기축으로 하여 종교적 상상의 도움을 받아 이루자지는 예술적 창작물이다. 이를 김성주 시인은 실천하고 있다.

종교시는 어디까지나 ‘시’라고 하는 언어예술로서의 미학적 가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종교시는 ‘종교’시가 아니라 종교‘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시는 특정종교의 경전을 정면적으로 재현하거나 신앙생활을 맹목적으로 고백하는 차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시인은 알고 있으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현장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래서 시인이 듣는 범종소리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꿈틀거리는 언어의 행방을 찾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를 실천하는 예언자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그의 구멍에서 제주4·3에 관련된 시들을 찾아 읽어보기 바란다. 역사와 문학의 관계가 과연 무엇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