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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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나 ‘마침내’는 이런 때 쓰라고 생긴 말이구나.
드디어 지난 12일 관덕정에 도착했다. 마침내 걸어서 제주 한 바퀴를 돈 것이다.

고두심씨와 함께 걸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하는가.

물 밖으로 나가기 전에 고향의 모습을 몸으로 느껴 보고자라는 답은 다분히 감상적이다.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건강을 한번쯤 점검해 보기 위해서라는 답은 그런대로 구체적이다.

그 답은 도보순례를 끝까지 마친 우리 몇 사람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풀렸다.

이십대에 한 푼 없이 미국으로 건너가 물리화학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돌아온 칠순의 김현영 박사, 새만금과 우리 쌀을 지키자는 어깨띠를 메고 다녀 ‘쌀 아줌마’로 통하던 박선자씨, 인천에서 온 함봉순.봉임 자매 아줌마, 부천에서 참가한 박연숙씨, 휴가를 내고 합류한 김은조씨, 그리고 꼬마 거북이로 귀여움을 받은 수정이와 남희, 특히 의리의 사나이 성공스님이 없었다면 우리의 우정은 빛을 잃고 말았으리라.

그렇다. 왜 걷느냐고 묻는다면 “도반들이 있기에”라고 답해야 옳다.

고두심씨의 곁에서 나흘이나 함께 걸으며 “고 여사 힘내!”라며 격려하던 입사동기 현석씨의 동료애를 나는 잊지 못한다.

두번이나 비행기 타고 내려온 장정희씨를 비롯하여 김병기, 심양홍, 박윤배씨 등 열다섯명 가량의 동료 연예인들이 없었다면 그녀도 가던 길을 포기해 버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임을 몸으로 보여준 그녀의 모교 출신 사람들의 우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남원 어디쯤에서 기다리다 떡을 나눠 주신 어느 할머니의 손길도 잊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걷느냐는 물음에 답할 차례다.

마지막 날 그녀의 연기 인생 30년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그녀는 ‘이 땅에서 태어난 것, 무엇보다 부모님 몸을 빌려 제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녀의 신앙이라고 고백할 때 그녀는 울컥했다.

신형원씨가 나와 ‘터’라는 노래를 부를 때 “이내 몸이 태어난 나라 온누리에 빛나라”라는 대목에 이르자 그녀는 다시 한번 울컥했다.

그렇다.

그녀를 걷게 하는 힘은 그녀의 터, 곧 어머니와 제주 땅이며, 우리가 걷는 이유는 ‘터’의 노래말처럼 우리의 숨소리로 이 터를 지켜 나가기 위해, 같이 만나서 큰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서리라. 분열이 아니라 하나 되기 위해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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