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濟) 고을(州)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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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세화고 교장/시인
물 건너야(濟) 닿는 고을(州) 제주, 필자(筆者)의 고향이다. 부을라(夫乙那) 후손이니, 삼신인의 탐라국 개국 때부터 고향이다. 한라산과 삼성혈이 있는 한, 그렇게 아니 이어져 갈 것인가.

부씨(夫氏) 성을 지닌 어느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이 다섯. 큰 아들에는 손자, 손녀까지 두었었다. 4·3이 그의 내외를 총살했다. 제주시 어느 사립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에 대한 누군가의 무고(誣告)에서였다.

무자년(戊子年·1948)이었다. 둘째 며느리는 섬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젖먹이 딸을 데리고, 풍선(風船)을 몰래 빌려 탔다. 제주해협 너머 청산도(靑山島)를 향하여, 바람이 불면 노를 쉬이고, 바람이 쉬면 노를 저었다.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이른바 보트피플(boat people)이었다. 아흐레 낮밤 뱃길에 닿은 곳, 부산 영도. 출타 중인 남편에게 고향 소식을 전했다. 그 해가 저물기 전 12월, 그 할아버지의 제주 자손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형의 며느리, 손녀들까지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그 압박에, 동생마저 세상을 떴다. 이듬해 경상도 어느 섬에서,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섬을 탈출한 그 며느리는 아들을 낳았다. 기축년(己丑年/1949) 음력 8월. 그 애기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60년이 흘러갔다. 다시 무자년(2008) 12월, 월간 ‘제주교육’이 원고를 청탁해왔다. 그 속표지에 실린 졸시(拙詩) ‘12월 제주’의 전문(全文)이다.

끝 낙엽까지 / 곳을 정하면 / 고향이 열린다 // 샛바리 마당에 서면/ 술래도 같이 들어 / 숨바꼭질도 잠에 든다 // 구들장은 솔방울이 맡고/ 돌담에 새는 하늬 소리 / 호롱불이 양말을 깁는다 // 어이 탓하랴 무자(戊子)를/ 밝게 보면 따뜻한 추위… / 예순은 안기고 싶은 아이 // 돌아 갈 곳 있다 / 열어 반기는 그 품이 있다 / 12월엔, / 엄마!

제주(濟州)는 영원한 엄마이다. ‘평화의 섬’이다.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이 섬에선 다시는 4·3의 재판(再版)은 없어야 한다. 포탄의 표적지가 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지구상에는 사람이 만든 ‘불가사의(Wonders)’가 일곱 곳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그런 곳이다. 상상이나 말을 허용치 않으니,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하지 않는가. 제주(濟州) 역시 불가사의에 충분히 속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측면에서이다. 모든 예술의 구성은 자연을 퍼 와야 할 것이며, 그 속에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 조화를 작가의 철학(주제)이 꿰어야 할 것이다. ‘7대 자연 불가사의( 7 Wonders of Nature)’의 후보지 대부분은 오직 자연 경관 뿐이다. 제주는 다르다. 한 가지 예(例)를 들자. 할망 바당(할머니 바다)은 오로지 제주에만 있다. 제주의 조상들이 불가사의하게 남긴 ‘자연과 인간의 삶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그것을 담으려고 애써본다. 졸시 ‘할망 바당’에.

소녀는, 퐁당! / 먼저 바다에 안겨야 / 시집 갈 나이로 찬다 // 물길 속 / 그 깊이만큼 수저 늘고 / 넓이 따라 자식들 큰다 // 한 숨길 / 한 바다 다 마시듯 / 서천(逝川) 아니 넘으려 참다, 참다 // 엄마! / 두 세상 새 가르는 / 숨비소리로 하늘도 꿰오며 // 물숨에서 세간도 늘려왔고 / 파도고랑 깊이 주름 겹쳐도 / 할머니 소꿉놀이 터밭처럼 / 가름 그어 살아온 할망바당 // 나오지 마십시오 / 퐁당퐁당 그곳에서/ 나이 거꾸로 내려 /소녀가 될 그때까지

조상의 영혼으로 만든 불가사의가 자손들에게 풍요를 주고 있다. 타지마할이 그렇고, 만리장성이 그렇다. 우리에게도 물려져있는 이것이 혹시 유기(遺棄)되지 않을까 두렵다. 001-1588-7715, (한국어 1번), 7715를 눌러야 할 것이다. 4·3의 영혼을 떠올리며, 숨비소리 내듯이 수없이 눌러야 할 것이다. 누구나 지금, 제주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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