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동의서 작성과 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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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리 제주한라병원 흉부외과장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본 사람은 누구나 수술 및 시술 동의서에 서명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치료를 함에 있어 치료가 필요한 이유와 치료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에 관해 의료진으로부터 상세하게 설명을 듣고 이러한 처치를 진행해 달라는 의미의 서명이다. 일반적으로 독립된 의사결정권을 갖는 환자 자신으로부터 서명을 받게 되며 이러한 설명으로 인해 환자가 불안감을 느껴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직계 보호자가 설명을 듣고 서명 날인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절차는 의사의 환자에 대한 법적 설명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 아니라 불안해하는 환자 및 보호자에게 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치료를 잘 받으면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술 및 동의서를 작성할 수 없는 상황이 가끔 벌어진다는 것이다. 의식을 잃은 환자가 보호자 없는 상태에서 119구급대에 의해 실려 오거나 주위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사는 사람이 응급 상황이 생겨 병원에 실려 온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환자가 온 경우 병원은 원무과 직원과 경찰의 도움으로 보호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은 신속한 진단 과정을 거쳐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경우 보호자를 찾게 되나 보호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가끔 만나게 된다.

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보호자와의 연락을 계속 취해 보나,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를 기다리기에는 환자의 목숨이 너무 위태로와서 바로 수술이나 시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이러한 경우 의식이 있는 환자인 경우에는 환자에게 직접 서명을 받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동의서 작성을 생략하고 바로 수술 및 시술을 시행하여 고귀한 생명을 구하려는 노력에 최선을 다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보호자를 기다리다가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 행정기관에서 병원에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러한 꺼져가는 생명과의 사투 과정을 보지 못한 일부 보호자들은 나중에 나타나서 치료의 결과가 나쁜 경우에 환자를 살려보려고 애쓴 의료진의 가슴을 향해 험한 말을 쏟아내는 경우를 가끔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그렇게 소중한 부모형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정작 보호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놓고 대신해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의사의 양심에 따라 환자를 살려보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덤벼든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일 것이다.

의사에게 있어 위험에 처한 생명이란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지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들이 환자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나 묵묵히 신성한 의업의 길에서 책임을 다하는 대다수 의사들을 도매끔으로 비난하는 일은 성숙된 선진 사회에서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웃 일본이나 미국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평이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행태들이 좀 과도하게 일반인들에게 투영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의료 현장 곳곳에는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하는 젊은 의사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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