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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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문제는 도덕철학에 있어서 오랜 논란거리이다. 철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떠나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 누구나가 한 번쯤은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미국 중남부 루이지애나주 정부의 선택을 두고 가치논쟁이 일고 있다. 지난달부터 미국 중부 일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미시시피강 물이 최고 수위를 기록했다. 미국 기상당국은 100년 만의 최대 홍수라고 발표했다. 남동부의 테네시주와 미시시피주의 14개 카운티 지역이 연방재해구역으로 선포될 정도다. 재난 전문가들은 강 유역 63개 카운티 주민 400만명이 홍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적 손실도 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와 미국 육군 공병대는 결국 모간자 배수로 수문 125개 가운데 일부를 열어 물길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1973년 이후 처음이다. 물길을 남서쪽으로 틀어 하류 동부의 인구밀집 지역을 구하는 대신 소도시를 ‘희생’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대도시 배턴루지와 뉴올리언스에는 20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고 미국 정유시설의 12%가 밀집해 있다. 반면 남서쪽 모건시티와 후마의 인구는 2만 5000명에 불과하다. 대규모 인명피해와 경제적 치명타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현지 언론은 이를 ‘악마의 선택’이라고 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 질주하는 전차의 기관사가 인부 5명을 치고 갈 상황에서 인부 3명만 희생시킬 수 있는 비상선로가 있다면 방향을 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강의를 듣는 대부분의 학생이 3명이 있는 선로로 방향을 트는 선택을 하겠다고 대답을 한다. 학생들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악마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철도 위 다리에 서있고 질주하는 전차가 인부 3명을 치고 갈 상황에서 옆에 있는 사람을 밀어 떨어뜨리면 전차를 세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사람을 밀어 떨어뜨릴 수 없다는 대답을 한다.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서귀포시 강정에 들어서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하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측 입장과 국가안보를 빙자해 천혜의 자연을 파괴하고 국민 인권을 유린한다는 반대측 입장이 극명하게 부딪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는 지난 17일 야5당 제주해군기지 국회 진상조사단의 해군기지 건설공사 일시 중단 요청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방부는 해군기지건설 사업이 전체적으로 14%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공사 일시 중단은 월 59억원에 달하는 국가예산 손실이 발생한다고 이유를 들었다. 국방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大)를 위한 소(小)의 무조건적 희생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가치인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닌 전체주의 사회일 수밖에 없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을 느낄 때 진정한 사회의 행복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위에 있어서 올바름의 기준이 되는 것은,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관계하는 만인의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안보와 강정주민의 행복이 공존하도록 하기 위한 ‘천사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이다.<부남철 뉴미디어국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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