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과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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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현 전 제주수필문학회장/수필가
사람들은 저마다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또한 생활신조와 철학을 가지고 야망을 키우며 자아실현을 위해 매진한다.

우리는 가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고 하지만 그것은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일 뿐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고자하는 인간의 욕망을 간과한 속단으로 보인다.

우리가 남기고 가는 흔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전기와 평전, 그리고 묘비명과 자서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 중 묘비에 쓰여 지는 묘비명은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흔적이다. 결국 망자가 세상에 던지는 최후의 메시지다. 인간은 죽음을 예감하고서야 진솔해 진다. 누군가의 발가벗은 외침 앞에서 산 자는 옷깃을 여미고,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가려온 가면 뒤의 허공을 모골의 송연하게 바라보게 된다.

묘비는 사람이 사망 후에 세워지는 표석이지만 살았을 때 자기가 직접 써 두는 것도 뜻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묘비명을 진지하게 생각해 봄으로써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명인사이거나 문호들이 직접 쓴 묘비명은 세월이 흘러도 곱씹어 볼만한 의미를 그 간결함 속에 담고 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매우 익살스럽게 쓰고 있다. 작품과 생활 속에 늘 풍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작가답게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94세에 운명한 세계적인 대문호이며, 모든 것을 다 성취하고도 또 다른 여운을 남기고 있다. 걸레스님으로 이름을 날린 승려이자, 화가인 중광스님은 “괜히 왔다 간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가 보기엔 여한이 없을 듯한 그의 삶조차도 자신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삶이었나 보다.

묘비명을 써 두는 것은 급변하는 세속의 흐름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삶을 조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욕망과 탐욕에 흐려져 있는 삶의 참가치를 재발견 하기위해 죽음의 시점으로 한 발 앞서 가보는 것, 죽음이 멀어 보이는 지금 묘비명을 작성하는 것은 더 나은 죽음 준비를 통해 삶 자체를 풍요롭게 재창조할 수 있는 멋진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인생이 내게 준 흔적들”이라는 자서전을 고교시절 은사로부터 받았다. 자서전은 지나온 삶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정확하고, 사실에 근거하여 쓰여 져야 함은 물론 객관성 역시 지녀야 한다. 은사의 자서전은 이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수작이며, 작품성이 높아 교본으로 손색이 없는 양서였다. ‘인생훈’이라는 교양서적으로 분류되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주에도 한라, 우당, 제주, 탐라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열람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서전하면 자신을 미화하고 공치사로 일관된 식상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선생의 자서전은 내밀한 개인사와 시대적 사명 속에 6·25 참전을 비롯한 파란만장한 80평생의 역동적인 삶을 가감 없이 진솔하고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국영기업체에서 국익에 일조를 하며 올곧게 살아온 발자취와 126가지 인생훈, 그리고 노후의 삶을 풍요롭게 창조해 나가는 계획성이 그것이다. 선생은 한국자산관리공사 고위직인 이사와 감사를 역임한 강경보 국가유공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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