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착한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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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철 前 제주문화원장/수필가
지난달 25일 ‘세상에서 가장 착한 결혼식’이 열렸다. 불로초의 전설에 얽힌 서귀포 정방폭포 벼랑 위 서복전시관(徐福展示館) 특설무대에 전국의 10쌍 부부를 초청, KBS 가정의 달 특집 웨딩콘서트를 열었다.

아들 딸 낳고 살면서도 형편의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그 한을 풀어주는 아름다운 결혼식이다. 다문화 가정이나 탈북 새터민을 위한 합동결혼식은 많이 보아왔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합동결혼식은 별로 못 본 터라 가슴이 설레었다. 주례 소임을 맡았으니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 날 제주엔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고 기온마저 떨어졌다. 얄궂은 날씨다. 하지만 제주 속담에 결혼식 날 ‘말발굽이 질어야 잘 산다’했으니 하늘은 축하의 비를 내린 셈이다.

신랑은 웨딩드레스로 예쁘게 단장한 신부의 손을 잡고 빨간 카펫 위를 걸어 무대로 오른다. 저마다 상기된 얼굴이다. 주례 앞을 지나며 인사마저 잊은 부부도 있다. 아마도 하늘로 오르는 기분이어서 그런가 보다.

한바탕 축하무대가 열렸다. KBS해피 FM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의 진행자 이택림의 재치와 노련미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더니, 마야를 시작으로 정수라·이치현·심신·시몬 등, 톱 가수들의 축하 무대는 바다마저 춤을 추게 한다. 정방폭포도 질세라 쿵쿵 북을 울린다. 천·지·인이 하나가 된 혼인식,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편지 낭송 시간이다. 초입부터 목이 멘다. 갖은 고통 속에 수십 년을 부부로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부들, 가슴이 얼마나 쓰릴 것인가. 고통을 사랑으로 매운 절절한 이야기에 눈물을 훔치지 않은 이가 없다. 옷깃을 스치는 것도 500 생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들의 질긴 인연은 몇 생의 집적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오늘 KBS가 그들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 60대의 신랑도 30대의 신부도 마음을 옥죄는 쇠사슬을 끊고, 무거운 짐도 부려놓았다. 날개를 얻은 새가 창공을 날아오르는 격이 아닌가.

혼인이란 무엇인가? 신랑과 신부가 일심동체임을 선언하는 일이다. 인간은 본래 남녀가 하나였다. 그 때 힘이 너무 장대해 신은 남녀로 분리시켜버렸다. 그 짝을 찾아 원상을 회복하는 것을 혼인이라 한다고 그리스신화는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둘로 쪼개진 비익조, 반쪽의 몸으로 오랜 세월 짝을 잃고 해매다 드디어 짝을 찾아 다시 하나가 되어 구만리장공을 훨훨 날아오른다. 중국의 신화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오늘 신랑도 신부도 자기 마음의 반을 잘라내어 그 자리에 신랑을, 혹은 신부를 앉혀 놓았다. 인간의 원형을 되찾은 것이다. 하늘 높이 날 수 있는 온전한 비익조가 된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듯 상대를 사랑하고, 자신을 용서하듯 상대를 용서하는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질 것이다.

가랑비가 멈추더니, 섶섬과 문섬이 활짝 웃으며 손짓한다. 갈매기들도 바다를 박차고 비상한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결혼식’, 제주의 자연도 1만8000 신들도 축하를 보내고 있음이 아닌가.

나는 문득 이곳 야외 특설 무대를 전천후 결혼식장으로 꾸미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장’이란 간판을 걸면 어떨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면 제주는 세계인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 메카로 부상할 게 아닌가.

어려움을 행복으로 바꾸며 살아온 신랑 신부들, 그런 삶을 보아온 가족들, 자리에 함께한 하객들, 한마음으로 울고 웃고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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