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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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열 한림중 교사/시인
‘잘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배 둘레가 부의 상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법정스님은 산업화 이후 우리의 식생활이 채식 위주에서 육식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먹어서 죽는다’는 글을 남겼다. ‘잘못 먹으면 오히려 죽음을 부른다’는 뜻의 역설적 제목을 보면서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먹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먹다’라는 말은 “음식 따위를 입을 통하여 배 속에 들여보내다”라는 기본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 의미 외에 ‘먹다’는 더 넓은 의미와 접목된다. 물질적인 것을 몸 안으로 섭취한다는 의미 외에 정신적인 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는 뜻도 담고 있다. “나이를 먹다, 마음을 먹다, 욕을 먹다” 등이 그것이다.

종합해보면 ‘잘 먹는다’는 건 우리 몸에 필요한 자양분을 섭취해서 생명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성숙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오늘은 ‘먹다’의 의미 중에서 정신적인 섭취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나이를 먹다’라는 말을 보자. 단순히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해짐을 뜻하면서 육체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를 먹다’라는 표현은 나이가 더해지는 만큼 경험 속에서 얻어진 지혜의 자양분이 켜켜이 내면에 쌓여감을 뜻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연륜(年輪)은 속이지 못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먹다’는 어떤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한다. 이 말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것이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의 얘기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에 이르러 어느 무덤 앞에서 잠을 잤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날이 새어서 깨어 보니 잠결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았다. 그 순간 사물은 있는 그대로 그 자체일 뿐이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에 달렸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원효는 그 길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온다. 더 이상의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마음을 잘 먹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잘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음식물을 아무리 잘 섭취한들 고통과 미움이라는 마음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닌다면 어디 자양분이 되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왜 욕을 ‘먹는다’라고 했을까? 욕을 ‘듣다’라는 말도 있지만 ‘먹다’라고 달리 표현한 부분은 우리 조상들의 현명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욕을 잘 씹고 삼키면 분명 좋은 자양분이 될 것임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욕을 먹고 금방 감사한 마음을 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슴이 철렁하고, 아프고, 상대가 미워지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려 합리화시키는 것이 보통의 순서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생각해보면 욕을 먹여준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임을 느낄 때가 많다. 쓴 약은 몸에는 단 법이다. 쓴 소리를 잘 듣고 꼭꼭 씹어 잘 삼키면 탈이 나지 않고 내게 약이 되는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들을 보면 욕먹을 만한 일들이 많아 보인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자기 자리에 대한 사욕만 채우는 것에 급급한 건 아닌지…. 탈이 나기 전에 쓴 소리를 잘 듣고 발전의 자양분으로 흡수시키길 바란다.

나이를 잘 먹고, 마음을 잘 먹으면, 욕을 먹어도 감사하고 거기서 발전적인 깨달음이 생기는 것임을 요즘 알게 된다. 그것이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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