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페투호프 연주회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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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오늘 밤에 제주시립교향악단 연주회가 있는데 갈 수 있겠니?” 이렇게 물어본 것은 시험기간이라 이 좋은 음악회를 놓칠까봐 조심스러워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아들과 딸이 이구동성으로 “시험공부해야죠. 아무리 좋은 음악회도 앉아 있으면 불안할 것 같아요”라는 답변에 두말 할 것 없이 남편과 함께 제주도문예회관으로 향했다.

이미 협연자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었지만 청명한 가을밤에 감동의 열기로 가득 채운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미하일 페투호프의 피아노 초청 연주를 듣고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북받치는 희열과 환희를 만끽하며 기립박수와 환희의 눈물 없이는 청중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이 가을에 선택받은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제주시립교향악단의 ‘페르귄트 모음곡’을 시작으로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단조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이며 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앙코르곡으로 3곡을 연주하는 동안에 2시간 이상이 흐르고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와 어디서 나오는지 강인한 파워, 지휘자의 해박한 해석능력, 단원들 개개인의 혼이 담긴 연주 모습에서 또한 수준 높은 청중의 감상태도가 혼연일체되어 무대로 빨려들게 한 음악회였다.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1873~1943년)의 곡이 연주됐는데, 아름다우면서도 강인한 러시아의 국민성과 슬라브적인 색채가 짙은 이 곡이 연주자의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클린카상을 받은 이 곡의 일화를 보면 라흐마니노프가 이 전에 작곡한 교향곡의 실패로 정신질환인 우울증에 시달릴 때 영국의 유명한 의사에 의해 치료를 받게 되는데 “당신은 이제 훌륭한 작품으로 세계 음악사에 남을 것이다”라는 계속적인 암시를 주어 치료받고 그 이후 바로 이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탄생시켜 실패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성공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연주자의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낭만적이고 환상적이기까지 한 이 곡은 확신에 찬 자신감 넘치는 타건을 선보이며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강인한 터치로 당당하게 밀고 나가는 연주자의 자태에서 또한 악장마다의 색다른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감상자들을 뒤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음악회가 끝나면서 무대 바로 앞에서 기립박수를 하는 청중의 모습과 사인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많은 학생들이 시험에 연연하지 않고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모습에서 저마다의 가슴 깊이 자리잡을 감동적인 낭만의 멜랑콜리는 영원히 남을 것이리라.

크고 화려한 무대만이 아닌 가장 낮은 곳에서, 병원에서, 산골마을 학교에 찾아가서 연주하는 제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를 비롯한 단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자녀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구입한 CD를 들으며 다시 한 번 감동의 순간을 되새겨 보았다. 모든 허물을 벗어버리고 생의 껍질을 노출하는 만추(晩秋)의 계절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음악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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