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와 약자에 대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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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구 한국문학정신 제주지부 총회장/수필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기조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운 뒤부터 공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가진 자들의 몰염치와 방탕, 감시 기구의 부도덕과 타락, 공직자들의 후안무치가 두드러지는 부산 저축은행 사태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을 분노케하고, 국가 사회의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 현실을 바람직한 공동체인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이끌려면 부든, 명예든, 권력이든 힘을 가진 자의 솔선수범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공정한 사회라는 어젠다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새로운 시민 정신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맞는 사회 지도층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의 요구를 뜻 한다. 그 유래는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百年戰爭)에서 시작됐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칼레시가 영국의 거센 포위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했다. 이때 칼레시에서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항복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에드워드 3세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대신 누군가가 그동안 저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칼레시 대표 6명을 공개 처형을 시키겠다고 했다. 이에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빠졌고 누가 칼레시를 대표하여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피하려고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그 당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피에르가 처형을 자처하자, 이어 시장과 귀족들도 동참하기로 한다. 그들은 다음 날 처형을 받기 위해서 스스로 교수대에 모였다.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하는 6명의 희생정신에 감명 받아 살려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면면히 계승되었고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이 되어 왔다. 이 정신은 신흥국가인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미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특정 계급인 귀족의 책무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책무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300억 달러를 기부한 빌 게이츠 회장은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 라고 말하는 등,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사회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계층을 위한 기부문화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선조들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거상 김만덕은 제주에 대기근이 닥치자 전 재산을 풀어 육지에서 쌀을 사들여 모두 진휼미(賑恤米)로 기부하여 빈사 상태의 제주 백성을 구제하였다.

경주 최부자 집안은 무려 3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하면서도 많은 선행과 일정 규모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특히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유지를 대대로 계승하였고,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며, 항상 검소하게 살며 자선을 베풀었고, 항일운동과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바치는 것으로 오랜 부의 세습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마무리 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나날이 심화되는 양극화에 서민들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약간의 자극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엇보다도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소외되고 그늘진 계층에 대해서 골고루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특히 정부는 사회적 빈곤의 대물림이 없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가난한 사람의 자녀들도 마음껏 희망을 가지고 밑바닥에서 위로 오를 수 있는, 즉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의 희망 사다리를 놓아 줄 수 있는 정책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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