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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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현 前 제주수필문학회장/수필가
일흔, 여든 줄 인생은 백전노장이다. 그들은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켰고, 조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역군으로 일조를 했다. 조국은 또 다른 우리의 이름이다.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고 황혼을 맞았다. 황혼은 고고하고 아름답다. 이는 인고의 세월 속에 창조된 피와 땀의 결과이며, 체험하지 않고는 가늠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이다. 노년은 향락과 탐욕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악덕의 근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던 돈, 명예, 여자, 출세 등의 유혹에서 초연할 수 있는 시기는 지금부터이다.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기에 원숙의 경지에 와 있다고 하겠다. 더 이상 잘난 체, 가진 체, 아는 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주눅이 들어 의기소침하거나, 경원시하리라는 염려는 금물이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희망을 노래하며 세계를 품고 살아가면 될 것이다. 고목에 핀 꽃이 더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던가.

통계청이 현재 65세에 달한 사람의 기대수명이 95세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면 인생 ‘칠십’은 옛말이고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 전에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이상윤 옹은 1917년 생으로 금년 95세이다. 그는 3년 전인 92세에 시작한 검도가 지금 유단자가 되었고, 같이 출연한 ‘기공사’ 윤금선 여사는 1930년 생으로 금년 82세인데도, 퇴직 후 시작한 기운동이 물구나무서기는 물론 어려운 동작을, 체조 선수를 방불케 하는 유연성을 과시했다. 이렇듯 나이는 한낱 수치에 불가할 뿐이다. 이러한 육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정신적인 젊음과 긍정적인 사고를 필요조건으로 공유하며 살아야 한다.

시인인 사뮤엘 율만은 일찍이 그의 유명한 시 ‘청춘’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때로는 20대 청년보다도 70대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정열을 상실 할 때 비로소 늙는다. 또한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랑, 꿈과 희망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버세대의 가슴에도 유효하다. 이승을 하직할 때까지.

나이가 들면 고루한 늙은이로 변모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고 착각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유유자적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 아니더냐. 내일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는 제 1,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태어나, 4·3 사건과 6·25전쟁의 난세 속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 시절과,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던 청장년기의 치열한 생존경쟁의 파고를 넘으며, ‘울 곳이 없어 불상한 아버지’로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해방된 민족(?)으로 우뚝 서서 우대받는 어른으로 군림하고 있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기막히게 좋은 시기는 ‘청춘’이 아니라 노년이고, 가장 가치 있게 사는 인생은 지금부터다.

이제부터 펼쳐질 여생은, 습작을 통하여 자칫 저지르기 쉬운 교만과 방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여유롭고 중후한 모습으로 거듭 날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더불어 고뇌를 승화시키고 석양의 오묘함을 관조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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