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돈 대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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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세종대 국문과 교수/소설가
강의실에서 만나던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등록금 인하를 소리치고 있는 이 여름, 대학교수라는 자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자괴감이 밀려드는 때는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던 날, 이른 아침 교정에 들어선 나는 학교 박물관 벽을 온통 가리듯이 걸려 있는 북한의 인공기를 보았었다. 왜, 누가 여기에 오늘 이 깃발을 거는가. 그때의 자괴감이라니. 그러나 이 여름에 느끼는 자괴감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



내 과목을 수강하는 꽤 많은 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나선 제자 가운데는 윤호도 있었다. 지나간 겨울, 윤호가 모 재단으로부터 등록금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추천서를 써 준 나에게 휴대전화로 장학증서를 찍어 보여 주면서 '엄마가 막 울고 난리 났어요'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윤호, 바로 그 윤호가 광화문에서 열리는 등록금 인하 시위를 다녀온 것이다. "저요, 그날 일찍 가서 처음에는 종이컵에 초를 꽂는 가내 수공업을 맡았어요. 그러다가 남자가 무슨 초를 꽂느냐며 끌고 가는 바람에 스피커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라며 그는 웃었다.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그것이 그가 들었던 피켓이었다.



대학생들이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사표출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사라진 지 몇 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른 봄 개나리꽃이 필 때나 반짝하다가 마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놓고 '개나리 시위'라는 이름까지 붙은 요즈음이다. 윤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교정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그 푸름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이 마른 나뭇잎처럼 아프게 가슴에 쌓였다.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까지 독서실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강의가 없을 때는 또 '스마트폰 어플 운영'이라는, 휴대전화에 TV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일을 시간제로 한다. 하루 다섯 시간밖에 잠을 못 자는 생활인 것이다.



자신은 등록금 걱정만은 안 해도 되게 장학금을 받지만 그 장학금은 '나 혼자만을 생각하라고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건 사회를 생각하라고 내게 주어진 것이잖아요. 등록금 문제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힘겨워하던 나였고, 현재 휴학하고 휴대폰을 팔고 있는 절친한 친구만 세 명이나 돼요." 자신을 그곳으로 이끈 것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 아니었나 싶었다는 말을 이어가면서 그가 가만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체 게바라."



이번 학기 교양강의에서 다룬 테마의 하나가 체 게바라의 생애와 혁명관이었다. 반값등록금 시위 현장에서 강의시간에 나왔던 체 게바라의 얼굴을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체 게바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이면서 남미가 겪고 있는 제국주의의 횡포와 자본주의의 착취에 대한 절망과 분노 속에 쿠바 게릴라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 쿠바에서의 혁명에 성공한 후 그는 쿠바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 모든 지위와 기득권을 버린 채 또다시 혁명의 길을 걷다가 끝내는 볼리비아에서 생포되어 죽음을 맞는다. 쿠바를 떠나며 어린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체 게바라는 혼자의 삶이 아닌 시대와 사회와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특히, 세계의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행해지고 있을 모든 불의를 너희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달을 수 있기 바란다."



그날 광화문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많았다고 했다. "대학생이라면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나가 있어야 하니까 대신 형, 누나 동생들이 모인 거예요. 발언을 하러 무대에 올라갔던 중3 여학생이 수줍어하면서, 언니는 알바 가서 못 오고 제가 대신 왔어요 해서 다들 함성을 질렀답니다." 그날 광화문 시위장에 울려 퍼졌다는 노래는 서글프도록 자조적이다. "나는 돈 대학생이다. 나는 없고 돈만 있는, 돈 돈 돈 세상. 알바가 내 목을 조여 오는 세상아, 내가 바라는 건 살아 있는 나 나 나." 도대체 이런 현실을 정책담당자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어른들의 진정한 대답이 메아리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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