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비를 세워주고픈 목민관
선정비를 세워주고픈 목민관
  • 조문욱 기자
  • 승인 201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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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지재(飽天之災·하늘에는 재앙이 가득한데), 포공지덕(飽公之德·세상에는 덕으로 가득하다)

최근 서귀포시 토평동 비석거리에 이전된, 제주목사를 역임했던 윤구동 목사(1754~1823)의 선정비(善政碑) 비문(碑文)이다. 서귀포시는 토평동 비석거리의 옛 지명을 복원하고 과거 목민관(牧民官)의 선정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 다른 곳에 있던 두 기의 선정비를 원 위치로 이설하는 공사를 최근 완료했다.

지방관료의 업적을 기리는 선정비 또는 송덕비(頌德碑)는 고려 충열왕 때 전남 순천시 영동지방을 다스렸던 승평부사 최석(崔碩)의 팔마비(八馬碑)가 효시로 알려지고 있다.

최석이 떠나게 되자 백성들은 관례대로 말 7마리를 선물했으나 최석은 폐습이라며 도중에 낳은 망아지까지 합해 말 여덟 필을 돌려보내자 백성들이 그를 칭송해 송덕비를 세우고 팔마비라고 불렀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제주를 비롯 팔도에 송덕비가 많았는데 부정한 수령이 자신의 청렴을 위장하기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억지로 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과천 현감의 송덕비 일화가 유명한데 과천 현감이 이임하는 날 송덕비를 제막했더니 비면에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이 도둑을 보낸다)라고 쓰여있고 그걸 본 현감이 옆에 덧붙인 게 걸작이다.

명일래타도(明日來他盜·내일 또 다른 도둑이 오리니), 차도래부진(此盜來不盡·이 도둑은 끊임없이 온다)

그러나 토평동에 있는 두 기의 선정비 주인공들은 재임기간 중 흉년과 기근으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자 급여를 내놓고 자비를 들여 육지로부터 곡식을 반입해 나눠주는 선정을 베풀어 지역주민들이 세웠다는 게 서귀포시의 설명이다.

이 선정비 이전을 보면서 당시 백성들처럼 도민들이 앞장서서 선정비를 세워줄 수 있는 목민관을 보고 싶은 게 요즘 현실이다.

1995년 첫 민선 도지사 및 시장·군수 선거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제주도 정치권은 진흙탕이었다.

지금까지 몇 차례 도지사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후보자 간, 전·현직 지사 간 질시와 반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출세와 승진을 위해 어느 한편에 줄을 서는 도박을 감행해야 했으며 선거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민선 5기 우근민 도정이 취임 1년을 맞았다. 우 지사는 취임 당시 경제성장 위기, 재정 위기, 사회통합의 위기, 미래비전의 위기기를 4대 위기로 보고 이를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겠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최근 감사위원장 자리를 비롯해 도정의 인사문제 전반에 대해 도민 사회 곳곳에서 많은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해군기지 문제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강정주민은 물론 도민사회의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가는 양상이다.

또한 도정 살림의 채무가 1조원을 넘어서면서 일부 사업은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중단되는 등 재정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도민들 역시 경제가 나아졌다고 체감하기 보다는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우근민 지사는 그제 취임 1주년을 맞아 “변화와 개혁을 멈추지 않고 제주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의 미래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윈스턴 처칠이 총리 취임식에서 “내가 바칠 것은 피와 눈물과 노고와 땀밖에 없습니다”라는 말처럼 도민을 위해 남은 3년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도민들이 앞장서서 우 지사의 송덕비를 세워줄지도 모를 일이다.

<조문욱 사회2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