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탐라문화제
기로에 선 탐라문화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인수 前 제주예총회장/시인
올해로 반세기를 맞는 ‘탐라문화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제주일보 본란 1월 7일자에 ‘탐라문화제 반세기’란 제목으로 피력한 바 있다. 그때 필자는, 개명된 ‘탐라문화제’ 명칭에 걸맞은 다양한 상징행사들을 개발하여, 역사가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민속축제로 새판을 짜줄 것을 주문했었다. 그런데, 집행부인 ‘제주예총’에서는 아직껏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가, 제주도가 6월 9일자 언론 등에 불쑥 ‘탐라문화제’를 가칭 ‘대탐라전’으로 확대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올해까지 이어온 탐라문화제가 제주문화의 원류를 찾고 지키는데 기여해 왔으나 주제프로그램 빈곤으로 도민과 관광객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세우며, 축제 컨셉은 해상강국 탐라의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컨셉을 부각시키는 내실 있는 컨텐츠 발굴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제주도는 이와 관련해 ‘대백제전’ 등 다른 지역 대표문화제를 벤치마킹하고 문화예술계 및 도의회, 전문가 등의 개별 의견을 수렴한데 이어, 오는 8월까지 도내 관련 단체와 축제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2012 대탐라전 조직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했다.(이상 제주일보 기사 요약)

행사계획 브리핑이라면 으레 행사 집행주체인 제주예총회장의 몫이었는데, 이례적으로 제주도가 전면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한마디로, 이제까지의 관례를 깨고, 본격적으로 새판을 짜겠다는 제주도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올 10월에 치르는 ‘제 50회 탐라문화제’를 끝으로, 2012년 제 51회에는 새판을 짜는 원년으로 삼아, 명칭도 집행부도 몽땅 갈아치우겠다는 말로 들린다.

어쨌거나 ‘탐라문화제’는 올해로 존폐의 기로에 놓인 것 같다.

‘제주예총’이 밀려난 자리에 새로 ‘(가칭)대탐라전 조직위원회’가 들어서고, ‘탐라문화제’ 명칭 대신 새로 붙여지는 ‘대탐라전’, ‘탐라대전’, ‘탐라신화대전’, 또는 도민 공모에서 선택될 ‘00대전(?)’ 등 툭하면 대(大)자를 붙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진부한 표현이 내년 제주에서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존총회(WCC)의 ‘들러리축제’로 과대포장될 모양이다.

벤치마킹하겠다는 ‘백제문화제’의 ‘대백제전’으로의 변신은 제주도와는 사정이 다르다. 기초단체인 공주시와 부여군이 해마다 번갈아가며 개최하던 ‘백제문화제’를 광역단체인 충청남도에서 흡수 통합한 것으로서, ‘대백제전’의 큰대(大)자가 ‘대륙백제’시대를 연상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으나, 축제의 전면에 지자체장이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관제(官製)문화제의 모습은, 구시대적 발상이 되살아난 것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이란 말이 있다. ‘거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온갖 고생을 함께한 아내를, 형편이 나아졌다고 집에서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제주예총’이 있었기에 ‘탐라문화제’가 있어 왔고, ‘탐라문화제’가 있기에 ‘제주예총’이 있어온 것은, 제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알만하다. 그것도 반세기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로지 향토문화예술 창달의 깃발을 내걸었던 단체에게, 이제 그 깃발을 거두라는 격이 된다면 ‘조강지처 하당(下堂)’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관변에 숱한 음해성 압력과 급진적 제보들은 있을 수 있다. 그럴수록 함께해 온 ‘제주예총’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인적 개선을 도모함은 물론, 축제 전문가들을 확보하여, 상설기구화하고, 서둘러 새판을 짤 수 있게 적극 지원하는 것이 제주도가 할 일이 아닌가?

민선 5기 우 도정의 문화예술정책도, 이미 선진국에서는 불문율이 되어있는 이른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아니던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는 뜻을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둔다’로 표현했을 따름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