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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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소설가
개구리 울음소리 드높던 지난 5월 어느 날, 제주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때 강원도 인제군에 소재한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두 달 일정으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저편 목소리의 주인은, 웃자란 대나무처럼 껑충한 키에 웃을라치면 눈부터 초승달로 눕는 김수열 시인이었다. 선배는 바로 옆 담장너머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말했다. 제주도 마라도에 창작스튜디오를 열게 되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묘한 기운에 휩싸였다. 아, 드디어 제주에도 작가들을 위한 집필실이 마련되는 것인가, 하는 각별한 감회와 함께 가슴에서 뭔가 알싸한 기쁨이 기포처럼 피어올랐던 것이다.

‘창작스튜디오의 거점은 기원정사 요사채(주지 혜진스님). 제주문화예술재단 레지던스 사업으로 시행되며, 기간은 7월부터 12월 말까지 6개월 간.’

소식을 듣고서 나는 쾌재를 부르며 옆방 작가들에게 달려가 자랑했다. 제주도에도 드디어 창작실이 문을 연다고. 동료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집필 공간을 구하는 작가는 많은데 창작실은 턱없이 부족하니, 연초가 되면 집필실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어본 경험이 있는 작가들로서는 마라도에 창작스튜디오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반갑기 그지없는 뉴스였던 것이다.

사실 작가들, 특히 전업 작가들 대다수는 창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찾게 마련이다. 인세 수입이 두둑한 소위 인기 작가들이야 따로 작업실을 마련해서 집필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부러 집을 떠나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된다.

현재 작가들이 입주해서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전국의 문인창작실은 5곳 정도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후배들을 위해 시작한 강원도 원주 치악산 품의 ‘토지문화관’이 있고, 역시 강원도 설악산 자락에 위치한 ‘백담사 만해마을’이 있다. 전남 담양에는 ‘글을 낳는 집’이 있고, 경기도 이천에는 이문열 작가가 운영 중인 ‘부악문원’이, 그리고 서울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연희문학창작촌’이 있다. 손수 취사를 해야 하는 연희문학창작촌을 제외하고 나머지 네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단기 1개월부터 장기 3개월까지 숙식을 제공하며 작가들이 창작에만 몰두하도록 배려한다.

창작실에서 만나는 문인들마다 내게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왜 그토록 풍광 좋은 제주를 두고 타지로 나왔느냐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집필실이 들어설 최적지인 제주에 아직도 창작실 하나 없는 것이냐는 불편한 물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제 제주에도 한시적이나마 창작실을 열게 되었으니 그런 질문을 받아도 넉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다.

마라도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들은 마라도의 주민과 호흡하면서 그곳 척박한 환경을 채찍 삼아 작품을 쓸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훗날 반드시 유무형의 자산으로 다시 돌아와 마라도를 빛내고 제주의 문학과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오는 15일부터는 마라도 선착장에 도착하는 방문객 중에 표정과 눈빛에서 전사적 결의가 느껴지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일 것이다. 이를 마라도 입장에서 보면 좀 수상한 사람들의 출현이라고 긴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들 모두는 창작을 통해서 마라도에 예술적 숨결과 가치를 불어넣고자 온 이 땅의 괜찮은 작가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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