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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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시대에는 신랑 신부가 오른손을 서로 맞댐으로써 결혼이 이뤄졌다.

이 같은 풍속은 동유럽의 폴란드, 불가리아 지방에서도 결혼식날 신랑 신부의 두 손을 끈으로 묶는 전통의식으로 발전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옛 결혼풍속에는 신랑 신부의 팔을 잎이 파란 덩굴로 묶어 엮는 민족들도 있다. 북유럽에서는 금화나 은화를 둘로 쪼개어 그 반쪽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결혼을 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풍속이 없는 대신 한 잔 술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부부 일심동체를 의식화했다.

웨스터 마크가 펴낸 ‘인류혼인사’를 보면 결혼반지의 유래가 신랑 신부가 두 손을 맞추거나 묶는 의식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이후 중세 로마로 오면서 결혼반지라는 것이 나타났는데 값비싼 보석을 장식한 것이 아니라 한낱 쇠로 만든 철(鐵)반지였다. 그것은 단순한 철반지가 아니라 가문의 상징을 표시하는 문양이었다.

요즘의 출신 학교 반지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것이 2세기 이후 값비싼 보석반지로 사치화하고 있는데, 웨스터 마크는 그 원인이 신부를 사고 파는 매매혼의 습속이 이 반지 교환의 습속과 야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아직까지도 딸을 시집보내면서 ‘딸을 팔았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바로 옛날 우리 사회의 매매혼의 증거일 수 있다.

실제로 고구려 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신부집에 들어가 3~5년 노역봉사를 하고 여러 가지 물품을 신부값으로 바친 후에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매매혼의 습속이 생겨나기 전에 있었던 두 손가락을 묶어 결혼을 성립시키는 의식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요즘 결혼반지의 사치가 위험수위가 넘어섰다는 보도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최고급 최고가 결혼반지 수요가 많은 나라가 없다고 한다. 정작 문제는 이 결혼반지라는 것이 우리의 전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인데 마치 고대부터 있어 온 것인 양 너나 할 것 없이 인식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요즘 결혼시즌에 결혼패물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값이 비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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