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제주 첫 순교자 이도종 목사 생애 기려
제주 기독교 성지순례길-순교의 길
2015-11-16 좌동철 기자
▲ 평양신학교를 졸업, 학사모를 쓴 이도종 목사 |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10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유학을 간 후 1922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했다. 1927년 김제에서 안수를 받아 제주 출신 첫 목사가 됐다.
1929년 귀향한 그는 순회 목사가 돼 개척 교회를 설립해 나갔다. 일제의 기독교 탄압에도 서귀포교회를 시작으로 남원·고산·두모교회 등 10곳의 교회를 개척하며 복음을 전했다.
4·3이 발발한 1948년 6월 16일 고산교회를 출발, 산길을 따라 대정·화순교회로 향하던 이 목사는 대정읍 무릉리 인향동에서 무장대(산사람)에 붙잡혔다.
순회 예배를 가던 목사인 것을 알게 된 무장대는 포섭과 회유를 했지만 이 목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다”고 맞섰다.
무장대는 동조를 않는 이 목사를 ‘서양 사상을 전파하는 예수쟁이’, ‘미 제국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웠고, 실신할 정도로 두들겨 팬 후 구덩이에 생매장해버렸다.
현장에 있던 무장대 일원이 훗날 고백으로 56세에 생을 마감한 이 목사의 최후가 세상에 알려졌다.
대정교회 신도들은 시신을 꺼내 장례를 치렀고, 산방산에서 갖고 온 돌을 정성껏 다듬어 순교 기념비를 세웠다.
기독교사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 ‘순교의 길’은 지금은 제주 서부지역의 중산간을 종단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길로 부활해 비극적인 역사를 보듬고 있다.
23㎞에 이르는 길의 여정은 한림읍 협재교회에서 시작된다. 1921년 모슬포교회 최정숙 집사는 당시 이도종 청년이 전도인 자격이 있는 것을 알고는 자비를 털어 복음의 황무지인 협재리에 그를 파견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이도종은 전도인 자격으로 협재교회를 개척했고, 1922년 평양신학교 재학 중에는 삼양교회 전도사로 파송돼 고향에서 시무를 맡은 바 있다.
협재교회를 지나 한경면 중산간에 들어서면 녹나무와 생달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등 상록 활엽수들이 울창한 저지곶자왈을 만날 수 있다.
저지오름~저청교회~청수성결교회~평화박물관을 잇따라 지나면 올레 14-1코스인 무릉곶자왈이 다가온다.
저지에서 무릉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무성한 숲의 생명력과 초록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순한 말들이 풀을 뜯는 문도지오름(260m)에 오르면 한라산과 봉긋봉긋 솟은 사방의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숨을 고르며 곶자왈에서 발길을 이끌다 보면 무릉2리 교차로 인근에 있는 이도종 목사 순교터가 나온다.
이 목사는 생매장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를 하며 예수의 부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