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
함성중 논설위원
2017-05-04 제주일보
이런 각박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방법으로 통상 유머를 든다. 서양은 특히 유머를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는다. 곧 부드러움이 뻣뻣함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다. 독설과 선동에 능한 정치인이 유머로 무장한 지도자를 넘어서긴 힘들다. 실제 웃음의 묘약을 활용해 큰 업적을 남긴 리더가 적지 않다. 그들은 막말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정적을 유머로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전 미국 대통령과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대표적이다.
▲링컨이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다. 상대 후보가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몰아세웠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은 링컨은 “내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면 왜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들고 나왔겠냐”고 반문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고 분위기가 이내 반전됐음은 물론이다.
시간과 공간은 다르지만 처칠의 유머 역시 멋들어진다. 한 번은 그가 의회에 늦게 출석하자 야당 의원들이 무례한 게으름뱅이라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처칠은 “늦어서 죄송하다. 여러분도 저처럼 예쁜 아내와 산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막말에 고성이 오갈 것 같던 의사당에 여야 의원들의 폭소가 흘러넘쳤다.
이런 수준의 정치라면 아무리 심한 정쟁을 벌여도 국민이 짜증을 내는 일은 없을 터다.
▲한국 정치판에는 유머가 거의 없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막말과 선동 등 네거티브 공세가 거세다. ‘이놈들아’ ‘도둑놈 새끼들’ ‘온갖 지랄’ ‘완전히 궤멸’ 등 상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독설이 쏟아진다. 그 대상이 나중에 국정을 의논해야 할 상대요, 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다. 상식을 벗어난 거친 언사가 남길 후유증이 걱정된다.
정치인의 품격은 말로써 완성된다. 때론 강경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어떨 땐 재치와 유머를 발휘하는 게 필요하다. 한마디 유머로 소통하고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보다 상책은 없을 것이다. 4일 앞둔 우리 대통령 선거가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폭발 직전의 형국이다. 언제쯤 풍부한 유머로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