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리 ‘통기레쓰’를 찾다가
최규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2017-10-17 제주일보
먼저 ‘용눈이오름’을 오르니 상쾌한 산바람에 억새꽃이 휘날린다. 정상에 올라 오름 전경을 바라보니 마치 용이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이어 발걸음을 월정리로 옮겼다. 월정은 아름다운 곳이다. ‘월정’이 ‘달 물가[月汀]’란 지명에 정취(情趣)가 깃들어 몇 번 가보았다. 월정 해변의 모래는 너무 부드럽고 곱다. 섬섬옥수보다 더 부드럽다.
월정리 어촌계 앞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어떤 농아 아주머니가 껌을 내밀었다. 빨간 글씨로 ‘사랑의 손길’이 적힌 껌 봉지를 보고 샀다. 껌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일행은 월정 해변 길을 걸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걷다가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껌 봉지를 꺼내어 동행하는 동문들에게 한 알씩 나눠 주고 껌을 씹으면서 걸었다.
껌을 다 씹고 나서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았다. 왕복 5km 정도 해변 길을 걸으며 아무리 찾아보아도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끝내 휴지통을 찾지 못해 하는 수 없이 다 씹은 껌과 봉지를 손에 쥐고 걷다가, 해변 정자 밑에서 일행에게 말했다.
월정리에는 쓰레기통 하나도 볼 수 없다고. 그러자 한 동문이 ‘지금 행정이 거꾸로 가니 세상이 거꾸로 가는 거’라면서, ‘쓰레기통’을 거꾸로 말하면 ‘통기레쓰’가 되니 차라리 그게 좋겠다. 나더러 글을 쓰라고 권유하니 망설였다.
끝내 껌을 버리지 못하고 귀가하여 내 집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청정 제주가 쓰레기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버리는 손 나쁜 손 줍는 손 고운 손’이란 생태 숲의 팻말이 늘 내 머리 깊숙이 박혀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