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는 섬으로 풍경이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2018-05-17     제주일보

강의 나가는 복지법인 춘강의 문학동아리 ‘글사모’ 회원들과 가파도 문학기행에 나섰다. 가파도는 30년 만이다. 그적엔 발동기선 타고 정신없이 휘청댔더니 이번엔 여객선 타고 선실 좌석에 앉아 호사했다.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5.5㎞ 떨어진 섬, 가파도 뱃길은 고작 10분이었다. 짧지 않은 동안, 섬이 많이 변해 있었다. 새 건물들과 알록달록 채색 단장한 슬레이트 지붕들이 눈길을 끈다. 파스텔 톤 무채색 옛 섬이 아니었다. 기억 속에서 한 조각 추억을 줍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몇 걸음에 닿던 민박집 그 아이, 어느덧 중년이 됐을. 그때 초등학교 5학년 소녀 ‘파랑이네’ 집을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

섬이 ‘청보리축제’로’ 한껏 달떴다. 보리밭은 작은 섬인 걸 충분히 잊게 한다. 바람도 쉬어가는 청보리밭의 일렁이는 보릿결. 가르마 탄 길 따라 건들바람이 살랑대고 떼 지은 사람들이 바람과 함께 흐른다. 까르르 웃는 정겨운 웃음도, 주고받는 다감한 말들도 함께 흐른다. 이 어인 조화인가. 지척에 굽이치는 창망한 바다가 보리밭으로 흘러들어 남실거리는 것만 같다.

밋밋한 보리밭 언저리에 나무 몇 그루 섰으면, 그래서 해풍에 휘적댔으면. 그게 섬을 역동적이게 했을 텐데. 나무가 없다. 그래도 가파도는 섬만으로 풍경이다.

가파도 문화는 이렇게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보리밭 초입에서 희한한 집과 만났다. 글로 쓸 수 있는 알맞은 그림기호는 무엇일까. 소라껍데기와 딱지로 도배한 집이라 하면 되나. 울타리에서 시작해 어귀며 사면의 벽에 이르기까지 온통 소라껍데기와 딱지를 붙여 놓았다. 어루만지다 몇 걸음 물러서서 보지만 그냥 손길이 아니다. 불규칙사방연속무늬가 집을 예술로 완성했다. 마당엔 아이주먹만한 몽돌을 오밀조밀 깔았다. 고 작디작은 것들을 낱낱이 줄 세웠다. 보는 이들이 탄성을 지르며 어깨를 맞대 인증 샷에 바쁘다.

섬은 바다를 끼고 풍경으로 앉아 있었다. 해안 길 올레 10-1코스를 걷기로 했다.

동네 벽들이 해녀의 물질 사진을 붙인 상설 전시장이다. 영등굿 장면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손으로 뜨고 그린 소품 전시장을 지나니, 눈앞이 바다다. 아이 키 높이로 둘러 바람 막고 해녀들이 언 몸 쬐는 불턱, 가족들의 무사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던 할망당과 선사시대의 유물 고인돌 군락지, 학교와 교회와 대원사 절 마당에 서 있는 해수관음상…. 가파도는 예사 섬이 아니다. 곳곳에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고 선인들 숨결이 배어 있어, 섬 전체가 자연사박물관이다.

해변 둔덕에 한창 자라는 키 작은 사철나무와 까마귀쪽나무들이 반갑다. 작은 숲이 다. 잇대어 아기 솔들이 줄을 섰으나 바닷바람에 부대껴 벌겋게 떴다. 섬에 숲이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바다를 끼고 공동묘지가 들어섰는데 이장하다 몇 기 남지 않았다. 이력을 아는 이의 귀띔으론 납골당에다 안치했으리라 한다. 장차 작은 섬에 무덤이 들어설 자리가 없겠다. 무덤을 방풍이라는 풀이 뒤덮고 있다. 고사리나 산딸기나무가 아닌 것도 유별나다.

네 시간 머물며 가파도를 섭렵했다. 책 한 권을 읽은 만큼 담뿍하다. 가파도엔 나무가 없다. 그래도 가파도는 섬으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