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예멘인 '러시'..."전쟁없는 제주에서 살고 싶어요"

올 들어 325명 제주입국 난민 신청...한 호텔에 120명 체류 '북새통'

2018-05-24     좌동철 기자
제주시

“전쟁이 없는 제주에서 살고 싶어요.”

지난 23일 제주시 삼도1동 한 호텔에서 만난 예멘인 무하마드씨(29·가명)는 3년간의 내전으로 식수·식량·의약품 부족과 전기가 끊긴 고국의 참담한 상황을 털어놨다.

중동국가 예멘은 3년간의 폭격과 교전으로 1만명이 숨졌고, 700만명은 심각한 영양실조로 아사 위기에 처했다. 무하마드씨는 지난 5일 제주에 입국, 난민 자격을 신청했다.

▲한 호텔에 120명 체류=객실 70실인 이 호텔에는 120명이 예멘인들이 머물면서 전 객실을 점유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들은 숙박비가 저렴하고 장기투숙이 가능해 이 호텔을 선택했다.

한 방에 많게는 4명이 머물고 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끼니는 계란과 햄 또는 감자스낵으로 때우고 있었다.

마침 라마단기간이라 금식을 해야 하므로 냉장고에는 생수병만 가득 차 있었다.

무하마드씨는 “우리는 갈 곳이 없다. 한국정부가 난민으로 받아줄 때가지 기다릴 뿐”이라며 심경을 밝혔다.

예멘에서 대학을 나온 알하드씨(28·가명)는 “예멘에는 아랍동맹군과 반군은 물론 이슬람국가(IS)가 뒤섞여 전쟁을 벌이면서 탄도미사일로 공습을 하고 있다”며 난민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한 예멘인은 결혼반지를 팔고 제주행 항공 티켓을 끊을 정도로 전쟁이 지속되는 고국은 두렵고 위험하다고 밝혀다.

제주에 온 이들 대다수는 20대 중후반 청년들로 예멘에 남아 있으면 전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어 생존을 위해 제주행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들 대다수는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체류를 하다가 제주에 입국하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일을 해도 월급이 너무 적어서 한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측에선 ‘할랄 푸드’(이슬람교도에 허용된 음식)를 먹을 수 있도록 주방과 식당을 제공해줬지만 이들은 조만간 숙박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떨어질 상황에 놓였다.

이들은 철저히 금주를 하고 여자들은 스카프의 일종인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다. 아내는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에게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개방적인 제주의 환경에 낯설어 하고 있다.

그래서 예멘인들은 늦은 밤 자신들이 투숙한 호텔 앞 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을 목격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난민 수용환경 태부족=제주지역에 예멘 국적 입국자는 2016년 10명, 지난해 52명에서 올해는 5개월 만에 325명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6배 이상 증가한 이유는 일본과 중국 등은 비자가 없으면 갈 수가 없지만 제주는 무사증(무비자)제도로 입국을 할 수 있어서다.

이들은 입국 즉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대기자로 이름을 올렸다. 난민 신청을 하면 최소 6개월 간 체류를 할 수 있다.

난민 자격이 불허돼도 소송을 하면 최장 3년을 체류할 수 있고 소송 기간에는 취업도 가능하다. 예멘인 대다수는 소송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처음엔 이들이 서울로 갈수 있도록 배려했으나 이로 인해 제주로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가 봇물을 이루면서 타 지역으로 가지 못하도록 전출 제한조치를 내렸다.

난민 신청자에게는 월 45만원의 생계비를 지원해 주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서 재산·소득, 질병 등을 고려해 일부에게만 지급될 예정이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난민 지원예산이 한정된 만큼 예멘인 전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지 않고 차등 지급될 예정”이라며 “이들은 의식주는 물론 의료서비스와 상담이 필요하지만 담당 인원은 1명에 불과해 제주특별자치도 차원에서 지원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에 온 난민 신청자는 3만2733명으로 이 가운데 불과 792명(2.4%)만 난민 자격을 인정받았다.

이를 볼 때 제주에 입국한 300여 명의 예멘인들이 난민 자격을 인정받기에는 현실은 녹록치 않은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