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 지나간 자리엔 여운이 흐른다

(2)와흘리 감귤꽃밭(下) 안개 자욱한 허공·꽃물결과 꽃향기 넘실거리는 과수원 머지않아 귤꽃 진 자리 황금빛 낯 밝힌 귤들 반짝이겠지

2020-05-28     제주일보

안개 자욱한 허공엔 길이 없을까. 온갖 새들이 보란 듯 허공을 가르며 길 내어 지나간다.

귤나무마다 자유자재로 들어선 크고 작은 귤꽃들도 지난밤에 못 다한 이야기로 분주하다. 귤꽃 향기가 진동하길 기대했는데 안개가 조금씩 걷어간 것일까. 아니면 이들도 코로나 19를 의식해서인지 안 보이는 마스크를 챙겨 쓰고 있는 걸까. 귤나무들의 가지 아래로 내려놓은 귤꽃 물결도 장관이다. 작은 파도 일으키며 넘실거린다.

꽃눈, 저들에게도 불면의 밤은 있겠지. 이슬이 찾아와 노닐던 길목, 지난날 밤하늘의 별들이 부추기는 말 주워듣곤, 하늘 향해 눈 흘기듯 떨리는 언약 주고받았을 테다.

서란영님이

팬플루트 연주로 철새는 날아가고’, ‘찔레꽃이 서란영이 오랜만에 돌아왔듯 애잔히 돌아든다. 간주로 오카리나 연주가 끼어들자 지나가던 새들도 발길 돌려 와 오래도록 엿듣고 있다. 나무 위의 새하얀 귤꽃들도 덩실거린다.

안개

해마다 귤은 먼저 익는 쪽이 있다// 무슨 간절한 기도 끝에 십자성호 긋듯/ 열십자로 껍질을 벗겨/ 잘 익은 알맹이 한 알 제일 먼저 먹여주고 싶어.’ ‘김정희와 시놀이팀이 귤나무와 어깨 견주고 강영란 시인의 귤 밭 애인을 콜라보로 낭송한다. 간절한 사연만큼이나 절절히 스며든다.

먼저 익는 쪽이 있다/ 당신 있는 쪽// 꽃잎 하나는 당신의 눈썹 위에 떨어지고/ 꽃잎 하나는 당신의 붉은 뺨에 떨어지고// 꽃잎이 당도하는/ 그 시간은 너무 아득해서/ 나는 자꾸 늙어 가는데/ 늙어 가면서 당신을 기다리는데// 해마다 귤은 먼저 익는 쪽이 있다// 무슨 간절한 기도 끝에 십자성호 긋듯/ 열십자로 껍질을 벗겨/ 잘 익은 알맹이 한 알 제일 먼저 먹여주고 싶어// 흙 묻은 내 손으로 줄 수 있는 건 이것 뿐/ 돋을 볕 같은 주황색 환하게 문질러 닦는다// 귤은 영년생永年生 나무 열매여서/ 오래 오래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열매를 가졌으니/ 모든 것이 다 잘 되었으니/ 귤 밭에 들어 자꾸만 바라보는 먼저 익는 쪽.//

-강영란, ‘귤 밭 애인전문-

순간순간을

일부러라도 웃을 일 만들어가며 살아갈 일이다. 순간순간을 오롯하게 즐기자며 가슴 속에 사는 사람아’, ‘오늘이 좋다는 김영헌 가수의 신고식 노래다. 안개 속에도 부지런히 환승 중인 과수원의 곳곳들처럼 호탕한 웃음도 선물한다.

일 년에 한 번 들썩이는 꽃물결과 꽃향기로 넘실거리는 와흘리 은오농장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라면 널따란 꽃그늘을 두를 법한 윤노리나무 곁에서 떠나기가 싫어진다. 농장의 상징이 된 듬직한 지킴이 나무가 굽어보며 넌지시 웃는다. 이곳 언저리의 돌무더기 위에 앉고도, 크고 작은 돌꽃들이 수놓은 꽃방석인줄도 모르고 앉았다가 일어서고 있기에 말이다. 이렇듯 놓치고 마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 봄도 하르르 지나갈까보다.

과수원의

과수원의 중심축인 윤노리나무가 굽어보는 넉넉한 품 안으로 들어 떠들썩하게 단체사진도 찍는다.

경계를 두기보다 경계를 허무는 안개도 오늘의 주인공인양 어깨 들썩인다. 머지않아 귤꽃들 진 자리로 황금빛 낯을 밝힌 귤들이 반짝거릴 테다. 진초록 열매들, 보란 듯이 떠오르는 해처럼 두둥실 뜨고 말 테다.

 

사회=정민자, 영상=김성수

사진=허영숙, 음향=김송, 그림=고은

시낭송=김정희와 시놀이

대금·반주=전병규·현희순

노래=김영헌, 팬플루트=서란영

=고해자

 

다음 바람난장은 530일 오전 10시에 서귀포시 표선면 초원의 집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