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낙수(落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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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세화고등학교 교장/시인

교정(校庭)에 가을이 가부좌하고 있다. 내년 여름이면 40년 6개월로 교단이 끝나는 걸 아는지, 가을 녀석이 자꾸 간지럼 주려고 덤벼든다.

 

문득, ‘선생님 등호(=) 가난한 사람’ 의 사범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청운(靑雲)을 꾸지 않는 젊은이가 어디 있겠는가. ‘잘 살아보세’는 ‘가난에서 벗어나 보세’인데, 그 가난을 무릅쓰겠다는 것을 꿈으로 지닌 대학생이 아니었던가.

 

가을을 마중하듯 학교를 둘러보고 있었다. 2층 복도 끝에서 돌아서니, 아까 없었던 두 남학생이 팔을 들고 무릎 꿇고 있었다.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앉아 있어도 덩치가 크다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수업 중 선생님은 올 봄에 임용된 여교사이다. 모른 척 하고 지날까 어쩔까 하는데, 학생이 먼저 말을 건네 온다.

 

“교장 선생님, 이런 경우 영어로 뭐라고 합니까?”

 

벌 받고 있는 계면쩍은 상황을 모면하려고 그렇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쩌석. 당돌한 녀석이군... 교장훈화 중에 영어가 섞여 나오고, 나의 교과 전공이 영어교육이라는 걸 아이들은 다 알고 있는데, 딴청으로 넘겨짚으려는 이 녀석 수작을 왜 내가 모를까.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권을 나라도 대신 채워줘야지’

 

“제나 잘콴다리여! 이 말은 제주어인데, 무슨 뜻이지?”
“모르겠는데요.”
“우선 ‘나이에 맞는 언어’부터 배우자. ‘너 몇 살?’, 이 때 ‘손가락 셋을 펴 보이면, 그 아이의 ‘언어나이’는 세 살인 것이다. ‘일곱 살’ 이러면, 그 아이의 ‘언어나이’도 역시 일곱 살이고, ‘아홉 살요’ 이러면 아홉 살이다. 중학생부터는, 열네 살입니다.’라고 ‘입니다’를 붙여야 나이에 맞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알았지? 그나저나, ‘제나잘콴다리여’는 무슨 뜻이지?”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은 무슨 뜻이지?”
“한자로는 못 쓰겠습니다마는, 잘못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뜻 아닙니까?”
“맞았어. 내가 예를 하나 들어 주지. 장애인 주차 구역에 비장애인인 나의 친구가 주차를 하려했었다.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잠시만 세우겠다며 세웠더니, 벌금(Fine)을 500달러 물게 되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제나 잘콴다리여(It serves you right)’이다. 너희들이 수업 중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몰라도, 내 생각엔 벌 받아 마땅하다. ‘제나 잘콴다리여(It serves you right)!’ 세 번 반복!”

 

아이들이 세 차례 반복했다.
“이제 그 상황(It) 대신에 ‘선생님(She)이 저에 대한 조치(serves me)는 온당(right) 합니다(She serves me right)’를 반복하는 거야. 알았지? 나는 ‘제나 잘콴다리여’ 할 테니, 너희들은 그 영어 문장을 반복해라. 자. 다섯 번 시작!!”

 

평생 중‘제나 잘콴다리여!’를 한 곳에서 가장 많이 반복해 본 순간이었다.

 

교장실 창문 앞 상사화(相思花)가 지고 있다. 잎과 꽃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엇박자로 서로 못 만나며 피고 진다고 하여 그렇게 불린다나

 

저 꽃대궁들 다 이울고 나면, 그 때야 잎이 날 테고, 대신에 낙엽이 건네는 소릴 듣겠구나. 그 무상(無常)에 젖어, 졸시(拙詩) ‘상사화’ 한 편을 이삭(落穗)으로 줍는다.
몸 사위어 맘 나고/ 그 맘 지면 몸이 난다/ 만날 수 없는 만큼 더 짙은/
넋으로나 토해내는 그리운 고함/ 딛고 선 땅 위에서 스러지기까지/
몸과 맘 엇 만남에 건네 얻은 것은/ 주지 않는 걸랑 애써 받으려 말자//
우리 서로 못 만나도/ 둘이 하나가 되는 그곳/ 그곳에 가면 같이 있다
안 띄게 만날 수 있다/ 땅속에서 뿌리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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