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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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현 前 제주수필문학회장/수필가

쾌청한 가을하늘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랑을 남김없이 발산하고 서산너머로 저무는 저녁노을이 아름답고 애처롭다.

 

나는 가을타는 남자인가보다. 낙엽이 구르는 소리도 스산하게 들린다. 가을은 정녕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는 가을이 좋다.

 

낙엽 한 잎에도 애잔함이 묻어난다. 억새꽃이 넘실대는 가을의 향연에 살가운 친구를 초대하고 싶다. 청명한 가을하늘은 욕심도 걱정도 내려놓고 그렇게 살라고 속삭인다.

 

서울에 Y라는 고향친구가 살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역전의 용사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소위로 임관했다. 해병대 포병부대에서 그는 군수장교로 나는 인사장교로 근무하며 막역해진 사이다. 해마다 고향을 찾을 때면 다른 B와 함께 회포를 풀곤 했는데. 이 친구가 올해는 사정상 올수 없게 됐다고 알려왔다. B와 나는 우리가 상경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어느 날 우리는 어렵지 않게 친구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호탕한 성격인 그는 특유의 너털웃음과 몸에 배인 매너로 따뜻하게 맞아줘 먼대서 찾아간 우리를 고무시켰다. 생각보다 건강도 매우 좋아보였다.

 

그날도 남자 셋만 모이면 한다는 군대이야기가 압권이었다. 중요한 화제는 Y의 사관학교 동기인 예비역 중위 S씨의 사랑얘기였다. 파월 전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연인과 파병기간동안 서신으로 사랑을 키웠던 그는 작전 중 ‘부비트랩’이 폭발하면서 하반신이 절단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인은 귀국해 입원 중이던 S중위의 간호를 맡아 보았고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양가의 반대를 극복하고 어렵사리 결혼을 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동화 같은 얘기가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얼마 전 보았던 ‘두 다리 잃은 미군에 용기 준 여자친구…’제하의 기사가 44년 전 S중위의 사연과 너무나 흡사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전쟁터에서 두 다리를 잃은 미군 중위와 명문대 출신인 여성 간의 사랑이야기가 미국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그것이다.

 

웨스트포인트(미육군사관학교) 출신 댄 버스친스키(27) 육군 중위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2주 앞둔 2009년 6월 워싱턴DC에서 친구의 소개로 레베카 테이버(25)를 만났다. 레베카는 예일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댄은 파병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레베카에게 반했다. 레베카도 남자다운 댄이 싫지 않았다. 계획이 변경된 댄은 바로 이튿날 전장으로 떠나야했다.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도 못한 댄은 레베카에게 문자로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사치스러웠나보다.

 

파병 2개월 만인 8월 어느 날 댄은 지뢰를 밟았다. 양쪽 다리가 허벅지 중간부터 끊어지는 중상이었다.

 

한 달 후 댄은 워싱턴DC의 월터 리드 육군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실을 찾아온 레베카에게 그는 “날 떠난다 해도 미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레베카는 “다리를 보고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병간호를 하는 2년여 동안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됐다. 레베카의 가족과 친구들은 혹시 그녀가 사랑과 동정을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것은 기우였다. 다리를 잃은 충격에도 당시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 먼저 애도하는 중위의 모습을 보며 ‘미래를 합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워싱턴의 댄의 한 아파트에서 같이 살며 사랑을 키우고 있다. 레베카는 댄에게 말한다. “다리를 잃으면 어때 나를 얻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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